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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에두아르 르베 <자화상 Autoportrait>을 읽고ㅣ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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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관념을 넘어서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ㅡ실제 작가 스스로는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고 하나ㅡ입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진작가 화가로도 활동한 에두아르 르베(Edouard Leve, 1965-2007)의 2005년 장편소설 <자화상 Autoportrait>에서는 정해진 서사도 없고 시간 흐름에서도 벗어난 간결한 문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출판사 소개에서는 이 작품을 '완벽한 자서전이자 완벽한 소설'이라 평합니다.  

 

<자화상>은 에두아르 르베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저녁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문장을 조금씩 써뒀던 쪽글을 모아 정리한 작품입니다. 사진으로 찍은 듯 박제된 건조한 문체에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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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나는 《인생 사용법》이 사는 법을, 《자살 사용법》이 죽는 법을 가르쳐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해외에서 3년 3개월을 보냈다. 나는 내 왼쪽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행의 끝은 소설의 끝과 같은 슬픈 뒷맛을 남긴다. (p7)

 

첫 문장에서부터 호감이 생깁니다. 제 인생책 조르주 페렉(George Perec)의 <인생 사용법 La Vie mode d'emploi(1978)>을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에서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왼쪽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건 좌뇌형 인간이라는 의미일까?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상에 전혀 관심이 없고 특출함에 대한 존경심이 없으며 보상에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끌린다. 나는 가부장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들과 있을 때 더 편안하다. (p14-15)

 

이상한 사람들에게 끌리는 에두아르 르베에게 끌리는걸 보면 저 역시 이상한 사람들의 부류에 속한다는 방증일까요. 두서없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인데 <자화상>은 그것을 그대로 구현한 작품으로 진정한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외국에 있을 때면 모든 것이 다소 비현실적인데 그로 인해 가끔 거기에 살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그곳이 더 이상 '외국'이 되지 않아 국가들을 바꿔야만 한다. (p56)

 

여행을 즐기는 에두아르 르베의 성향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일상이 이어지고 익숙해지면 그곳은 더 이상 '외국'이 아니죠. 외국의 정체성은 낯섦입니다. 암요.  

 

 

내가 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을 감지만, 내가 듣는 것이 나를 성가시게 하면 귀를 닫을 수가 없다. 나는 내 기억을 비운다. 스펀지를 꽉 쥐는 것은 껌을 씹는 것처럼 재미있다. (p62)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은 다음 문장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스펀지를 꽉 쥐는 감각과 껌을 씹는 식감을 연결한 것이 절묘합니다. 눈과 입은 닫을 수 있지만 귀와 코는 닫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요.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다. (p144)

 

<자화상>의 끝부분에는 2008년 출간한 <자살 Suicide>에 등장하는 '너'라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도 무심한 듯 한쪽에 적어두고 있습니다. 마치 다음 작품을 예고하듯 말이죠. 


2025.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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