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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JMG 르 클레지오 <성스러운 세 도시>를 읽고ㅣ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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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전반에 걸쳐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품입니다.

 

현대 프랑스 문단의 신화적인 작가로 불리는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 1940년생)의 단편소설집 <성스러운 세 도시 Trois villes saintes>입니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스웨덴 학술원은 그의 작품에 대해 "새로운 시작과 시적인 모험 및 감각적인 황홀경을 표현하는 작가로 지배적 문명을 초월한 인간성과 그 이면을 탐구"하였다고 평했습니다. 

 

JMG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몇 권 읽었지만 <성스러운 세 도시>가 그 만의 독특한 문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모호하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긴 어렵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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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세 도시>는 1980년 발표한 단편소설집으로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사라진 성도(聖都) 세 곳을 찾아가는 순례기를 신성의 언어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성스러운 세 도시>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샨카」, 「틱스카칼」, 「슌 폼」으로 역사 가운데 함락당한 후 세상으로부터 잘려나간 곳들입니다.

 

어떤 역사가 있는 곳인지 구글링해보려는데 쉽지 않네요. 

 

 

그토록 많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도, 그토록 광활한 공간, 광대한 하늘, 평평한 땅과 먼지가 있는데도 자유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곳에 자유는 없다. 자유는 침묵과 재로 뒤덮이고, 바람도 없는 공기 중에 꼼짝도 못 하고 갇혀 있으며 다른 말들과 더불어 잊혀졌다.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신들은 침묵하고 있다. (p11) 「샨카」 中

 

작품 속 화자는 아메리카 마야 원주민의 그림자 속에 묻힌 목마른 대지, 길 없는 깊은 숲을 헤매며 그 속에서 신성한 기원을 찾아나갑니다. 말할 수 있는 신들이 침묵한다는 표현이 너무 근사하네요. 

 

 

아, 물이여 내리소서, 물이여 내리소서.(...) 이곳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의 하나. 나무들로 뒤덮인 사막 한가운데의 한 점, 유일한 한 점이다.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 알려지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지점이다. 이 땅은 아주 조용하고 소박한 장소이다. 이곳은 태양에 불타고 가뭄으로 타들어갔으며... (p31) 「샨카」 中

 

JMG 르 클레지오에게 1969년에서 1973년까지 약 4년간 중남미의 인디언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성스러운 세 도시> 집필의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서구 문명에서 태어나 성장한 작가에게 이 경험은 서구적 세계관의 한계에 봉착한 그에게 새로운 정신적 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태양에 불타고 가뭄에 타들어간 중요한 장소 <성스러운 세 도시>는 물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먼지가 발 밑에서 버석거리며 작은 구름들을 일으켜 발목을 감싼다. 땅은 끔찍하리만치 목이 탄다. 나무들과 덤불들도 갈증을 느낀다. 입 안에서 말이 돌처럼 까칠거린다. 그들은 물을 기다리고 있다. (p63) 「슌 폼」 中

 

JMG 르 클레지오의 소설은 한 편의 긴 산문시를 연상하게 하는데 <성스러운 세 도시>는 그 이미지를 한층 더 굳힙니다. 

 

 

방문객의 그림자가 커지면 그 그림자는 그 자리에서 퍼져나가 태양을 가린다. 그곳엔 무거운 침묵과 엄숙한 고요가 자리잡는다. 차가운 비 한 방울이 나뭇잎과 집의 지붕들 위로 떨어진 것은 밤이 채 내리지 않은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p82) 「슌 폼」 中

 

<성스러운 세 도시>에 마침내 차가운 비 한 방울이 떨어집니다. 꼭 한 방울. 

 

JMG 르 클레지오의 작품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나는 충분히 감동하지만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그러니까 직접 읽어봐야만 가치를 아는 글입니다. 


2025.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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