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삽화가 장자크 상페(Jean-Jacques Sempé, 1932-2022)의 그림 이야기책 <계속 버텨! Garder le Cap>입니다. 장자크 상페의 유머러스하고 푸근한 그림은 불호가 없기로 유명한데 저 역시 오래전부터 애정하고 있습니다. 가냘픈 선으로 무심한 듯 그려낸 상페만의 독특한 그림체는 어느 책에 실려 있어도 상페의 그림임을 알아챌 수 있게 합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페 자신을 닮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죠. 인상도 좋으신 작가님.
난 요즘 들어 혼자서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걸 깨달았어.
그림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갑니다. 군중 속의 고독을 암시하듯 검은색 슈트를 입은 노신사가 쇼윈도 속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네요. '언제 이렇게 늙었나..'라고 혼잣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 신사의 얼굴에서 장자크 상페가 보입니다.
별다른 설명이나 코멘트가 없는 그림입니다. 우아한 중년의 부인 두 명이 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목줄을 한 강아지가 온 마을을 크게 돌고 돌아 다시 부인 곁으로 왔습니다. 그동안에도 수다는 끊이지 않네요. 경험상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수다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블라블라.
재미난 물건을 파는 상점에서 이 초를 샀는데 말이죠. 순전히 이번만큼은 내 기도를 잊지 말고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답니다.
잘 차려입은 한 여성이 독특한 모양의 긴 초를 교회 제단 앞에 봉헌하고 있습니다. 요상하게 생긴 초를 올리는 이유는 자신의 기도를 꼭 돌아봐달라는 간절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마 지난번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던 것 같네요. 기복신앙을 희화화한 그림입니다.
그래도 이번 소원은 꼭 이뤄지길.
"뭐라고? 이제 겨우 시작되어 외울 것도 없는데 역사 시험에서 빵 점을 받았다고?"
위 그림에 달린 멘션입니다. 원시인 아버지가 자녀들의 역사 시험 성적을 보고 나무라는 중이네요. 심지어 빵 점이라니 인생에 있어 공부가 전부가 아니란 걸 이미 알아버린 걸까요.
장자크 상페는 스스로를 '해학 데생 작가'라고 소개합니다. 초기에 일간지와 주간지의 삽화로 실리던 그의 그림은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며 예술의 반열에 까지 올라섰습니다. 장자크 상페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장면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느낌이 듭니다.
2025.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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