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태생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 1954년생)의 장편소설 <클라라와 태양 Klara and The Sun>입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발표한 첫 번째 작품으로 저자는 이 책 집필에 무려 6년이라는 공을 들였습니다.
우화적 SF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인공지능 로봇과 어린아이들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써 내려간 작품입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소설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인 AI의 사랑은 늘 어딘가 꺼림칙한 시선을 받아야만 하는지, 과연 인간의 사랑과 다를 게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20세기에 태어난 저로서는...
내가 쇼윈도에 가고 싶어 한 데는 햇빛이나 선택받을 가능성과 무관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 놓아야겠다. 나는 늘 바깥세상을 아주 세세하게 보고 싶었다. (p19)
매장에 진열된 클라라는 조금 독특한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바깥세상에 호기심이 많고 거리를 비추는 햇빛의 색깔, 사람들의 표정,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학습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인간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할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리창으로 다가와 안을 들열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주로 아이들, 아이들은 우리를 가리키며 웃고 괴상한 표정을 짓고 유리를 두들기고 손을 흔들었다. (p21)
AF(Artificial Friend)인 클라라와 다른 로봇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역시 아이들입니다. 그 가운데 클라라의 친구가 될 소녀, 조시가 있습니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야윈 데다 어딘지 외로워 보이는 조시를 본 클라라는 조시에게 끌리고 조시 역시 클라라에게 꼭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거 참 좋겠다.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지 않는 거.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거. 자꾸 지난 일을 돌아보게 되지 않는 거. 그러면 모든 게 훨씬 더..." (p139)
조시와 클라라는 결국 친구가 되고 클라라는 인간들과 생활하면서 다양한 것들을 배워나갑니다. 사람의 행동 양식은 어떠하며 심리적인 작용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알아가는 클라라를 통해 조시의 어머니와 아버지 역시 인공지능 로봇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우 복잡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p172)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라가 인간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도 여전히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 봐. 그리고 그 방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p320-321)
조시 아버지의 말에서 인공지능이 결코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인간의 마음.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인공지능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요즘 시대에 AI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이기 더 쉽겠지요 조시처럼. 그러나 20세기 인류인 저로서는 여전히 우려와 두려움이 앞서는 건 옛날에 본 SF영화 탓일까요. 허점 투성이라도 온기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클라라와 태양>을 쓴 이유는 어쩌면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시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말이죠.
2025.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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