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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김영하 <검은 꽃>을 읽고ㅣ장편소설, 멕시코 애니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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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유명한 작품인데 제목이나 내용이 어둑어둑해서 외면하다 이제야 읽습니다. 

 

1905년 막연한 기대를 안고 멕시코로 떠난 한국인 이민자, 소위 '멕시코 애니깽'의 삶을 다룬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입니다. 약 120년 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약한 나라, 한국인은 가장 힘없는 인생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이 머나먼 중미 멕시코로 향하게 된 배경 역시 그래도 여기보단 나을 것이라는 기대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멕시코 농장의 채무노예로 전락해 타국 이곳저곳을 떠돌며 고난의 세월을 살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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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김이정. 먼 나라로 간다. (p17)

 

<검은 꽃>의 주인공은 김이정이라는 소년입니다. 부유한 상인도 양반가문 출신도 아닌 이정은 멕시코에서 돈을 잔뜩 벌어 조선으로 돌아와 땅을 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이 배에 오릅니다. 조선에서는 땅 가진 자가 대우받는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이미 배웠던 것이죠.   

 

 

이정은 말했다. 거기에서도 저 조선에서처럼 반상과 노소, 남녀의 구별이 이리 엄할까. 우리가 탄 이 배를 보라. 양반이든 상것이든 줄을 서야 밥을 먹는다. 우리 위에 있는 저 양놈들 눈엔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은 조선놈일 뿐이다. (p78)

 

조선에서 양반으로 살았던 사람도 이 배에서는 그저 가난한 나라 조선에서 온 노동자일 뿐입니다. 오히려 앉아서 책만 읽던 사람보다 노동일을 하던 이들이 멕시코에서는 더 환영받겠지요. 이정은 앞으로 자신에게 펼쳐질 멕시코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기대에 차있습니다.  

 

 

 

농장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순서대로 조선인들을 골라 자기 농장으로 데리고 갔다. 유카탄 반도 전역의 스물두 개 농장으로 1032명의 조선인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p93)

 

1905년 5월 15일에 조선인들을 태운 배가 멕시코 남부 살리나크루스(Salina Cruz)에 정박합니다. 승객들은 낯선 멕시코인들이 내미는 손을 잡고 큰 배에서 작은 보트로 옮겨 타고 미지의 대륙으로 향합니다. 

 

이들이 뿔뿔이 흩어진 유카탄 반도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칸쿤(Cancun)과 멕시코 내에서도 안전한 여행지로 꼽히는 메리다(Merida)가 속한 지역입니다. 바로 이곳에 120여 년 전 혈혈단신 농장노동자로 일하러 온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농장주와 이민자들은 몇 번에 걸친 파업과 폭동 끝에 심각한 위협 없이도 서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법을 깨달아갔다. (p215)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한인들은 오직 그때 같은 배를 타고 온 1032명뿐이었고 이들은 단단한 결속력으로 비인간적인 강제노역에 맞서 저항했으며 원하는 것을 얻어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멕시코로 떠난 이들은 대부분 깨어있는 이들이거나 지식인들이었으니 농장주들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한인 노동자들이 마야 원주민들과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한국인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죠. 

 

 

한 해가 지났다. / 그리고 또 두 해가 지났다. / 더러 죽은 자, 달아난 자가 있었다. (p215)

 

이 세 문장이 1905년에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를 안고 멕시코로 떠났던 조선인들의 운명을 그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은 힘없는 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지, 국가라는 것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넌지시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1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인은 세계 어디를 가나 '부잣집 자녀'로 대우받는 걸 보면 말이죠.


2025.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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