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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슈테판 츠바이크의 「수많은 운명의 집」을 읽고ㅣ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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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의 여행기를 엮은 <수많은 운명의 집 Das Haus der tausend Schicksale>입니다. 빈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였으며 대학에서 철학과 문예학을 공부한 슈테판 츠바이크는 1920-1930년대 유럽 최고의 작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34년 나치 집권 후 고향 오스트리아를 떠나 런던과 미국을 거쳐 브라질로 망명하게 되고 그곳에서 유럽의 멸망을 지켜보며 절망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수많은 운명의 집>은 여행을 즐겼던 츠바이크의 여행기 일부를 연도순으로 발췌해 편역 한 것으로 이제 거의 100년도 더 된 그의 여행기는 전 세계의 역사이자 츠바이크 개인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팬이라면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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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운명의 집>에서는 빈, 런던, 파리, 옥스퍼드, 뉴욕, 피렌체, 잘츠부르크 같은 세계 주요 도시들을 포함한 그가 스쳐간 여러 장소들이 소개됩니다. 방랑자 DNA를 타고 난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성향을 지원해줄 물질적인 부요함 또한 가진ㅡ어쩌면ㅡ행운아 였습니다.  

 

 

브루게의 수백 년 된 높은 종루에서 이 고색창연하고 멋진 마치 마법에 걸린 듯한 도시, 인접한 바다의 향기로운 숨결이 스치고 지나가는 벨기에의 평평한 땅으로 쭉 뻗은 이 도시를 내려다보면 이곳이 죽은 것 같다는 인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p7) 「1902, 북쪽의 베네치아」가운데

 

벨기에 서북부 브뤼헤(Brugge)를 묘사한 표현입니다. 8년 전쯤 인근 도시인 겐트(Gent)와 브뤼헤를 같이 돌아보며 닮은 듯 다른 두 도시를 비교해 보던 기억이 납니다. 1902년의 브뤼헤에서 고요함과 몽상적인 장엄함을 이야기한 츠바이크의 눈에 담긴 그 도시의 풍경은 지금과 무척이나 다르겠지요. 그러나 21세기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여행자가 있는 걸 보면 그 도시 고유의 분위기는 여전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정신없는 도시, 동시에 그 낯선 다양함에 놀라기도 하는 이 매력적인 도시... 이 도시는 고정되어 있거나 확고부동하게 짜인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오직 리듬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p51) 「1911, 뉴욕의 리듬」가운데 

 

클래식의 대명사인 오스트리아 빈 출신 츠바이크에게 뉴욕은 놀랍고, 정신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움은 그를 격하게 흥분시키고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는 난간을 부여잡고 현기증을 버티기까지 합니다. 다리가 조금씩 계속해서 흔들리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서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츠바이크가 말하는 '리듬'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였던 것입니다.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모험과 위험 변덕스러운 우연과 불확실성의 향기가 맴돈다. 우리가 여행하는 까닭은 자신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그러니까 자신이 아닐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다. 여행을 함으로써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아가기를 잠시 중단하고자 한다. (p131) 1926, 여행하기 혹은 여행당하기

 

여행을 사랑한 츠바이크는 여행사를 통해 수동적인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진정한 방랑을 알지도 누릴 줄도 모르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옳습니다. 의도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과연 여행의 참된 의미이겠지요.  

 

 


<수많은 운명의 집> 본문이 끝나고 나면 '불안과 방랑'이라는 제목의 옮긴이의 말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내용 중에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헤르만 헤세에게 쓴 편지의 일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을 잊어버리셨습니까? 저는 아닙니다. 저는 어디든 가고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즐기려 하는 불안을 가지고 있으며 제가 이것들을 언젠가 피로와 게으름 속에서 잊어버릴까 봐 나이 드는 일이 제일 두렵습니다." (p193-199) '불안과 방랑' 가운데 헤세에게 쓴 편지 일부

 

100여 년 전의 여행은 지금보다 훨씬 고되고 위험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진심을 다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여행기에 붙은 <수많은 운명의 집>이라는 표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문구입니다.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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