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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존 케네디 툴 「바보들의 결탁」을 읽고ㅣ장편소설, 퓰리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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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출간되어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케네디 툴(John Kennedy Toole, 1937-1969)의 장편소설 <바보들의 결탁 A Confederacy of Dunces>입니다.

 

저자의 생몰연대를 보면 이 작품이 존 케네디 툴 사후 10년도 더 지난 시점에 출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툴은 생전에 이 책을 출간하려 했으나 거절당하고 우울증과 좌절감에 시달리다 32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후 어머니의 노력으로 1980년에 마침내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바보들의 결탁>은 결국 존 케네디 툴의 대표작이자 유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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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사냥모자가 살덩어리 풍선 같은 머리통 윗부분을 쥐어짜듯 꾹 덮고 있었다... 북슬북슬한 검은 콧수염 밑으로는 두툼한 입술이 일자로 앙다문 채 툭 불거져 있었고, (p15)

 

<바보들의 결탁>은 1960년대 초 미국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그 도시에 사는 서른 살 백수 청년 이그네이셔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이그네이셔스의 '그 다운' 외모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대충 봐도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과연 그는 얼마나 대단한 인물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외모입니다. 

 

 

"당신, 이 동네 사람인가요?" "이 도시로 말하자면 문명세계 언어도단의 죄악들이 죄다 모인 총본산인데, 경찰의 임무라는 게 기껏 나를 괴롭히는 거란 말입니까?" 이그네이셔스가 백화점 앞에 서 있는 군중들이 다 듣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p18)

 

백화점에 들어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이그네이셔스에게 경찰이 다가와 불심검문을 시도합니다. 이그네이셔스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는 경찰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습니다. 도박꾼, 매춘부, 적그리스도, 마약중독자, 사기꾼, 쓰레기 무단 투기자가 득시글거리는 이 도시에서 그런 자들은 보호를 받고 결백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건드리는 건 대단한 실수라는 것이죠. 이 그네이셔스의 기개에 놀란 경찰이 슬쩍 뒷걸음질 칠 정도입니다.

 

 

 

이그네이셔스는 중세사상의 기반을 닦은 철학서인 「철학의 위안」에서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로타 포르투나이, 즉 '운명의 바퀴'를 믿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행운과 불운이 주기적으로 번갈아 찾아든다고 했다. (p55)

 

중세학을 공부한 이그네이셔스는 철학자 보에티우스(Boethius)를 가장 좋아했으며 그가 저서에서 해석한 행운의 바퀴를 가진 포르투나 이야기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이그네이셔스는 자신에게 최근 닥친 여러 사건들이 그의 운명의 바퀴가 급속히 아래로 회전하고 있다는 사인이 아닐까하는 마음에 걱정이 됩니다. 

 

"난 마음을 정했다. 이제부터 넌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도록 해라." 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지금 그에게 무슨 비열한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 체포 사건, 차 사고, 그리고 일자리, 과연 이 끔찍한 불운의 주기는 어디쯤에서 끝이 날까? (p81)

 

'덜떨어진' 경찰의 권고로 결국 이그네이셔스는 난생 처음 자본주의 사회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 할 처지가 됩니다. 어머니에게 빌붙어 만년백수로 살던 그에게 불운의 주기가 닥친 게 분명합니다. 

 

 

직장에서의 첫날 근무가 끝난 지금, 나는 정말이지 초주검이 된 상태다. 하지만 낙담해 있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패배감에 젖은 기분으로 비춰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 체제와 정면 대결한 것이다. 이 체제의 맥락 속에서 소위 위장한 관찰자이자 비평가로 활동해 보겠다는 각오를 철저히 다지면서 말이다. (p117)

 

이그네이셔스는 공장에서 근무한 첫 날 퇴근길 택시 안에서 글을 씁니다. 자본주의 체제와의 정면 대결은 집에 틀어박혀 사회 고발장만 써대던 이그네이셔스를 고작 한나절만에 초주검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핫도그 하나 들겠나? 난 인종과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정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파라다이스 핫도그는 공공 편익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지." / "이봐, 이 직업은 아주 만족스럽다니까. 야외 근무에, 상관의 간섭도 없고, 유일한 부담이라면 발이 아픈 것뿐이지." / "내 그럴 줄 알았어. 다시 말해, 완전히 부르주아가 되고 싶다 이거군. 자네들 족속은 전부 세뇌되었군그래. 자네도 출세를 한다거나 뭐 그런 꼴불견이 되고 싶은 거겠지." (p420-421)

 

인근 술집에서 일하는 종업원과의 대화에서 이그네이셔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혁명가적 태도가 잘 드러납니다.

 

말 잘하고 백인에다 석사 학위까지 있는 이그네이셔스가 노점에서 핫도그ㅡ그 이름도 찬란한, 파라다이스 핫도그ㅡ를 팔고 있는 것을 술집 종업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 사고한 이그네이셔스는 어리석은 세상을 향한 외침을 멈추지 않습니다. 출간된 지 4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말이죠.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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