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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조르조 바사니의 「금테 안경」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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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라 연작 소설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작가 조르조 바사니(Georgio Bassani, 1916-2000)의 1958년 작 <금테 안경 Gli occhiali d'oro>입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수학한 조르조 바사니는 유년시절을 페라라에서 보냈습니다. 또한 페라라의 한 일간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반파시즘 운동으로 체포되어 페라라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사망 후 유해는 페라라의 유대인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페라라는 조르조 바사니를 품은 도시입니다. 

 

<성벽 안에서(1956)>, <핀치 콘티니가의 정원(1956)>, <금테 안경(1958)>, <문 뒤에서(1964)> 등으로 이어지는 페라라 연작 소설은 이탈리아 파시즘 치하를 살아가는 민중의 혼란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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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기억을 흐리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페라라에서 파디가티 선생님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p7)

 

<금테 안경>이라는 표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비인후과 의사 아토스 파디가티가 쓴 금테 안경에서 따왔습니다. 일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경 파디가티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고 고향 베네치아를 떠나 페라라로 왔습니다. 젊은 나이에 외모도 준수하고 공손하고 신중하며 청렴하고 자비롭기까지 한 의사 파디가티는 누가 봐도 순조롭고 평온하고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작은 마을 페라라에서 미혼인 파디가티는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작고 투명한 사회에서는 자신의 삶에서 공적인 영역과 사생활을 분리하고자 하는 정당한 요구만큼 무분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p13)

 

훌륭한 인품으로 의술을 베풀었지만 그럴수록 파디가티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커져만 갔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정말 괜찮은 남자' 파디가티 선생에게는 온전히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파디가티가 '그거'라고,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럴 만해" "이상하긴 했어, 확실히." "어째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사람들은 파디가티의 결함을 늦게나마 알게 된 것... (p19)

 

보통의 사람들은 결함이 없어 보이는 존재들에게 무의식적인 경계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심은 대체로 대상을 향한 폭력성으로 드러납니다.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죠. 파디가티가 페라라에 온 지 10여 년이 지나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이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가 가는 게 낫겠어." 파디가티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조용히 자리를 뜨는 사이, 우리 등뒤의 골목에서는 음란한 조롱과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p121)

 

1930년경, 파디가티가 40대에 들어선 시점에 <금테 안경>의 화자는 볼로냐 대학을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이런저런 구실로 병원에서 해고된 후 대학강사 자격을 얻기 위해 주 2회 볼로냐를 오가던 파디가티와 둘은 만나게 되고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파디가티에게 연민을 느끼고 친구가 됩니다.  '다름'이나 '소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당시 사회에서 유대인인 화자와 동성애자인 파디가티는 비슷한 처지라고 봐도 되겠지요. 

 

밤늦은 시각 길을 걷는 두 사람과 그들을 뒤따르는 암캐를 묘사하는 장면 위로 쓸쓸함이 내려앉습니다. 

 

 

"안녕, 내 소중한 친구... 잘 지내." (p131)

 

공손하고 신중하며 청렴하고 자비롭기까지 했던 <금테 안경> 파디가티의 외로운 삶에 '소중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면 그것으로 조금은 위안이 될까요. 파디가티의 작별인사처럼 둘 다 잘 지내길 바랍니다.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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