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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한강 작가 「작별」을 읽고ㅣ노벨문학상 수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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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을 모은 작품집입니다. 수상작인 한강 작가의 <작별>이 표제로 사용되었고 여섯 편의 수상 후보작도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도서관에 한강 작가의 작품을 따로 모아 별도의 서가를 만들어 놓았는데 대출 중인 책들이 많아 겨우 이 책 한 권을 손에 쥐었습니다.  

 

<작별>은 어느 날 갑자기 눈사람으로 변해버린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도입부가 마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 한 남자를 그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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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빡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p13)

 

'난처한'이라는 형용사가 <작별>의 첫 단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버린 걸 발견한다면 놀랍거나 당황스럽거나 두려운 감정이 먼저 일어날 듯한데 겨우 '난처한'이라니, 대체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이게 혹시 마지막인가. 그녀는 문득 의문했고, 살아오는 동안 두어 차례 같은 의문을 가졌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그때마다 짐작이 비껴가곤 했는데, 기어이 오늘인가. (p17)

 

1인칭 화법으로 전개되는 <작별>의 담담하고 차분한 문체에서 눈사람이 된 그녀의 성향이 보입니다. 그 담담함과 차분함이란 수많은 상처와 깊은 고뇌가 만들어낸 것일 테죠. 어쩌면 머지않아 녹아 없어지게 된 그녀에게 눈사람이란 예정된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이것이 정말 마지막인지 속으로 조용히 가늠해 봅니다. 

 

 

아이는 말했다. 마치 고독한 어른을 흉내 내듯 뒤이어 고백했다. 엄마가 집에 오래 있으니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사실 엄마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잖아. 아무래도 나는 혼자 있어야 강해지는 성격인 것 같아. (p36)

 

주인공은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들 윤이는 마치 언젠가 다가올 엄마의 마지막을 예감이라도 한 듯 지난봄 그녀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고독한 어른인 그녀를 보고 자란 윤이 역시 고독한 어른이 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지난 후에 돌아보면 마치 예언과도 같은 말들이 우리 삶에도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윤이와 주인공에겐 이 대화가 그렇겠죠. 

 

 

두 사람의 입술이 만났다. 그가 차가움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입술과 혀가 녹는 것을 견뎠다. 그것이 서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p54)

 

그녀에게는 연하의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그와 체온을 나누는 일은 눈사람이 된 그녀를 빠르게 녹아내리게 합니다. 위로가 되는 것은 눈사람이 된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그래도 따뜻했다는 것이겠지요. 따뜻하면 더 빨리 녹아내리는 눈사람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요.

 

분명히 알 수 없는 건 이것뿐이야,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p46)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인터뷰를 떠올려보면 <작별>이라는 작품의 이미지와 저자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치 한강 작가의 음성이 덧입혀진 오디오북처럼 들리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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