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일이 제멋대로 어그러져, 고대했던 기쁨은 고사하고 슬픔과 고통만 맛보는 일이 허다하잖니! _로버트 반스 「생쥐에게 To a Mouse」 가운데
이 시는 196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의 1937년 작품 <생쥐와 인간 Of Mice and Men> 소개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해도 무자비한 운명 앞에 번번이 무너지는 연약한 인간을 그려낸 작품으로 로버트 반스의 이 「생쥐에게」라는 시에서 소설의 제목을 따왔습니다.
<생쥐와 인간>은 20세기 초 경제 대공황 시기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난 두 이주 노동자 조지와 레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영리하고 체구가 작은 조지 밀튼과 어리숙하지만 크고 건장한 레니 스몰은 완벽한 콤비처럼 보입니다.
"우리처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야. 가족도 없지, 어디 속한 것도 아니지. 도대체 앞날이란 게 없지." "우리는 달라! 왜냐? 왜냐하면... 나에게는 나를 돌봐 줄 네가 있고, 너에게는 어를 돌봐 줄 내가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지." (p28)
농장을 전전하는 이주 노동자의 삶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둘은 언젠가 자신의 땅에 정착하는 꿈을 갖고 살아갑니다. 서로를 돌봐주면서 말이죠.
소설 <생쥐와 인간>은 전체가 대화체로 되어있어 한 편의 희곡을 읽는 듯합니다.
"돈을 벌 때까지는 버텨야 돼. 어쩔 수가 없어, 레니, 최대한 빨리 떠날 거야. 나도 여기가 싫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몇 푼만 있어도 당장 여기를 뜰 텐데..." (p61)
20세기 초 캘리포니아의 농장에서 조지와 레니가 나눈 대화는 오늘날 들어도 어색함이 없습니다. 사직서를 품고 사는 21세기 직장인들의 대화와 크게 다를 게 없네요. '몇 푼'에서 차이가 있을 순 있겠습니다.
<생쥐와 인간>에는 농장 이주 노동자의 인생과 우정을 주축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대공황 시기의 좌절과 우울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존 스타인벡이 10대 시절 농장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하니 실제 현실은 더 비참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레니가 물었다. "왜 합숙소에 못 들어와?" "난 흑인이니까. 나한테서 냄새가 난다나? 흥, 분명히 말하는데 내 코에는 너희들 모두 냄새가 나." (p122)
농장의 흑인 노동자 크룩스와 레니의 대화입니다.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크룩스는 혼자 별도의 숙소에서 지내는데 그곳에 찾아오는 이는 주인과 레니뿐입니다.
조지와 레니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둘의 우정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질지, 로버트 반스의 시가 작품의 결말을 예고하는 듯하지만 뭐, 그 기대하지 않은 생의 결말 또한 나쁘다고 할 순 없겠지요. <생쥐와 인간>은 그저 주어진 오늘을 살아갈 뿐입니다.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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