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21세기 뇌과학의 정수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겼다(정재승 교수)"라는 이 책의 추천사를 보고 읽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뇌과학에 관한 책을 이전에도 몇 권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책입니다.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의 저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입니다. 원서 제목은 부제로도 쓰인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뇌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로 그 진실을 알게 되면 되는대로 허투루 살 수 없게 됩니다. 비장.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전체 240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많지 않지만 모든 페이지에 흥미로운 정보가 담겨있어 매우 알찬 책입니다. 그 정보들 가운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도 있고 뜻밖인 것도 있는데 중요한 몇 가지만 정리해 봅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벌레에서 진화해 아주아주 복잡해진 신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p31)
배럿은 우선 우리 뇌의 역할을 설명합니다. 뇌는 '신체예산(body budget)'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복잡한 신체를 운영하는데 이를 과학 용어로는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고 말합니다. 즉 몸의 필요를 자동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뇌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보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것과 우리 뇌가 구성한 것의 조합이다. (p108-109)
시각, 청각, 촉각, 통각 같은 감각의 경우 지금 경험하는 것과 이미 뇌 안에 저장된 것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예컨대 추상화를 감상할 때 추상적 요소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관람자 모두 제 각각의 감상평을 갖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죠. 피곤해서 기력이 없는데 과거 경험에 비춰 배가 고프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간식을 먹는 것도 뇌 탓(!) 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 뇌는 당신이 인식하기 '전에'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이는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p116)
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모든 행동은 뇌가 과거 경험을 통해 예측하고 준비한 결과로 일어나는데 이 논리에 따르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지금 우리 뇌는 다르게 예측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활동, 새로운 경험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럿은 '오늘 배우는 모든 것은 내일을 다르게 예측하도록 뇌에 씨를 뿌려줄 것이다.(p118)'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것들을 배워 뇌를 재배선할 수 있다. 마음을 변경하는 더욱 도전적인 방법은 그 마음을 다른 문화로 옮기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활동을 '문화적응(acculturation)'이라고 부르며, 이는 가소성의 극단적인 형태와 같다. (p158-159)
뒤편에서는 '문화적응'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해외 이주나 전학, 이사, 대학진학, 취업, 결혼, 출산, 은퇴 같은 발달단계의 상황들이 뇌 재배선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갑작스럽게 새롭고 모호한 감각 데이터 속에 던져진 우리 뇌는 스스로 낯선 상황에 적응해 나가며 재배선되는 것입니다.
'말의 힘'은 비유가 아니다. 말의 힘은 당신의 뇌 배선에 있다. 말은 인체를 조절하는 도구다. 다른 사람의 말은 당신의 뇌 활동과 신체계통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당신의 말 역시 타인들에게 똑같은 영향을 끼친다. (p132-134)
말에 힘이 있다는 이야기가 과학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몸에 미치는 언어의 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우리의 신경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즉 수세기 전 일어난 사건, 성경이나 불교 경전 같은 고대 문헌 역시 지금 우리 신체와 직접 연결되는데 양서를 읽고 좋은 말을 서로 나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관계, 친밀한 친구, 서로 배려하는 파트너, 반려동물과의 관계 역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줄이고 심각한 질병의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p129)고 말합니다.
배럿 박사가 서문에서 말한 대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비전문가인 독자들에게 뇌과학에 관한 호기심과 재미를 부족함 없이 채워주는 책입니다.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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