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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니콜라이 고골(Nikolai Gogol) 「외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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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우크라이나 출신 극작가 니콜라이 고골(Nikolai Gogol, 1809-1852)의 대표작 <외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코>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인데 낯설고 그로테스크한 특성을 가진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은 역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외투>는 1842년 발표한 단편소설로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의 병폐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이 책에 대해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린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며 극찬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 등도 러시아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 끼친 고골의 영향력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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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의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관청에서 9급 서기로 일하는 하급 관료입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아까끼는 적은 급료로 궁핍하게 살아갑니다. 여기서 아까끼 아까끼예비치(Akakii Akakievich)라는 이름은 '응가'를 의미하는 '까까(kaka)'와 비슷하게 해 희극성을 높이고자 했다는 분석이 있을 만큼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름입니다. 

 

 

이 가련한 젊은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그 후 평생 동안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를, 누구나 알 만한 세련되고 품위 있고 명예로운 사람들조차 그 고상하고 점잖고 자랑스러운 인품 뒤에 얼마나 잔인하고 무례한 면을 감추고 있는지를 깨닫고서 얼마나 몸서리를 쳤는지... (p63)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자신의 일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으며 글씨를 정서하는 일에서 자신만의 즐거운 세계를 발견할만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벗어진 하급 관료에 초라한 옷차림으로 말없이 맡은 업무에 열심을 내는 아까끼를 사람들은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기까지 합니다. 아까끼는 관청에서 일하며 인간의 잔인함과 무례함을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어느 날 수선조차 할 수 없을만큼 너덜너덜하게 해진 자신의 <외투>를 발견한 아까끼는 어쩔 수 없이 새 외투를 주문하고 외투값은 1년 동안 생활비를 줄여 마련하기로 합니다. 저녁을 굶고, 마시던 차도 끊고, 촛불도 켜지 않고, 신발과 속옷은 최대한 아낍니다.

 

 

그렇게 새 외투를 기다리는 아까끼에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중엔 저녁을 굶는 것이 완전히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대신에 미래의 외투에 대한 끝없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 보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 자신의 존재가 보다 완전해진 것 같았고, 마치 결혼한 것 같기도 하였으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혼자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마음에 맞는 유쾌한 반려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 동반자란 다름 아니라, 두꺼운 솜과 해지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외투였다. 그에게 웬일인지 생기가 돌았고 이제 스스로 목표를 정한 사람처럼 성격이 보다 강인해졌다. 때때로 눈에서 불꽃이 보였고, 머릿속으로는 아주 뻔뻔스럽고 대담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는 완전히 산만해졌다. (p76-77)

 

글씨를 정서하는 일에서 온전한 행복을 느끼던 아까끼는 이제 일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새 외투와 사랑에 빠집니다. 새 <외투>는 아까끼에게 마치 그의 정체성과도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새 외투를 갖게 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강도들에게 새 외투를 빼앗깁니다. <외투>를 잃어버린 아까끼는 추위와 분노에 몸져눕게 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것들뿐이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지 정신없이 튀어나오는 말이나 생각들이 전부 하나같이 외투와 연관되어 맴돈다는 점만을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p93)

 

온통 강도에게 빼앗긴 외투에만 사로잡혀 있던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둡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외투와 관련된 헛소리들을 내뱉으면서 말이죠. 

 

주목할 만한 일은 장관의 외투가 유령의 몸에 꼭 맞았던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더 이상 외투를 빼앗긴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p99)

 

그가 죽은 후 아까끼 아까끼예비치 유령은 도심 곳곳에 출몰해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아 갑니다. 여기서 외투란 단순히 체온 유지에 필요한 옷을 넘어선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뻔뻔스럽고 대담하고 오만한 인간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거죠. 부하 직원들에게 호통치고 함부로 대하는 장관이 유령에게 외투를 빼앗긴 후 성품이 변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까끼가 교만이라는 외투를 모두 가져가버렸으니 이제 세상이 조금 살만해지는 것일까요. 그리고 자기에게 꼭 맞는 장관의 <외투>를 입은 아까끼 유령은 평안을 찾았을까요. 성실한 하급 관료를 칭찬하면서도 잔인하고 무례한 고위 관료가 되고자 하는 마음,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외투>를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 그리고 그 <외투>를 잃어버렸을 때 타인의 <외투>라도 빼앗고 싶은 마음, 이런 인간 심리의 근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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