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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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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법학자이자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1944년생)의 대표작 <책 읽어주는 남자 Der Vorleser>입니다. 15세 소년과 36세 여성의 사랑을 다룬 다소 파격적인 내용으로 1995년 출간 당시 세계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책 읽어주는 남자>는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며 나치독일이라는 시대상, 개인의 비밀과 수치심, 정치적인 갈등 같은 훨씬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독일 문학으로는 처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으며 2008년에는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각색되었습니다. 아프도록 아름다운 이 소설이 영화로는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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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미하엘은 열다섯 살이던 때 황달에 걸려 하굣길에 심한 구토를 일으키고 이를 본 서른여섯의 여인 한나(슈미츠 부인)의 도움을 받습니다. 미하엘은 감사 인사를 하러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둘은 비밀스러운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행동한다... 행동은 나름대로의 원천을 갖고 있으며, 나의 생각은 나의 생각이고 나의 결정은 나의 결정이듯이 나의 행동 역시 독자적인 방식으로 나의 행동인 것이다. (p31)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할 수 없는 '그것'에 의해 미하엘은 한나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늘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미하엘이 책을 읽는 동안 온 신경을 집중해 듣습니다. 

 

"그 책을 좀 읽어줘!" / "직접 읽어요, 책을 갖다 줄 테니까." / "꼬마야, 넌 목소리가 예쁘잖니, 네가 읽어주는 것을 듣고 싶어." (p59)

 

두 사람의 만남에서 책을 읽는 것은 가장 우선시 되는 의식(儀式)과도 같은 일이 됩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바로 열다섯의 미하엘입니다. 한나는 미하엘을 통해 수많은 책을 읽었고 그럴수록 알 수 없는 불안이 커져갑니다. 책이 한나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입니다. 

 

 

 

한나가 어느날 사라져 버리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고 8년 여가 흘러 법대생이 된 미하엘은 나치 전범 재판에서 피고석에 앉은 한나와 재회합니다. 그리고 재판을 참관하면서 한나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한나의 수치심이 법정과 수용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범죄를 저지른다고? (p169)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진 연인, 이제 40대 중반이 된 한나를 법정 방청석에서 지켜보는 20대의 미하엘은 어떤 마음일까요. 오랜 시간 자신이 문맹임을 숨기기 위해 위장하고 회피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범죄에 의도치 않게 가담하게 된 한나는 결국 모든 죄를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법학자 미하엘은 당시 한나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을 품고 살아갑니다. 카세트테이프에 책을 녹음해서 한나에게 보내주고 한나에게 면회를 가서 사면되는 날 직접 데리러 오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면회는 둘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맙니다. 사면일 아침 한나가 스스로 목을 맸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두 눈은 다시 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잘 가, 꼬마야." / "당신도 잘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p249)

 

교도소장의 안내를 받아 한나가 머물던 방과 유품을 둘러보며 미하엘은 눈물을 삼킵니다. 유품들에서 미하엘을 향한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스스로 읽고 쓰는 법을 배운 한나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와 관련한 서적을 신중하게 골라 읽었습니다. 어쩌면 한나의 마지막 선택은 문맹을 벗어난 그녀가 비록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질러 버린 죄에 대한 속죄의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5.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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