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 Maniac」을 읽고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Benjamin Labatut, 1980-)의 네 번째 소설, 2023년에 출간된 <매니악 Maniac>입니다. 저자의 전작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2020)>와 같은 논픽션 소설로 "20세기 가장 똑똑한 사람이자 외계인"으로 불린 전설적인 과학자 존 폰 노이만에 관한 허구화된 전기입니다.
벵하민 라바투트의 작품은 전작도 그랬듯 단편인 듯, 장편인 듯 특이한 구성에 읽다 보면 해설을 뒤적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각기 다른 이야기같지만 결국 한 가지 주제로 모이는 글, 벵하민 라바투트는 천재일까요? (이미 팬이 돼버린 1인)
<매니악>의 서사구조는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의 삶을 중심에 두고 전편 1부에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 1880-1933)의 개인사, 후편 3부에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놓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더 넓은 관점에서 하나의 주제로 꿰어집니다.
파울은 넬리가 말한 피타고라스학파의 현자와 자신이 묘하게 이어져 있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방에서 부조화와 격동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우주를 다스리는 합리적인 질서나 자연법칙, 반복적인 패턴을 더는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비이성의 존재를 지각했다. _1부 가운데
<매니악> 1부에서는 폰 노이만보다 조금 앞선 시대를 살다간 파울 에렌페스트의 개인사와 그가 발견한 불확정성과 양자역학에 기여한 비이성에 관한 서사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1부 첫 장면이 파울이 장애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렇게 출발한 30여 쪽에 불과한 천재 물리학자의 짧은 서사는 <매니악> 전체 분위기를 끌어갑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초현실적인 능력, 거꾸로 말하자면 오직 기본만을 보는 특유의 근시안은, 그가 가진 천재성의 비결인 동시에 흡사 어린애 같은 도덕적 무지의 이유였다. _2부 가운데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존 폰 노이만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매 페이지마다 그의 천재적인 논리와 이성, 광기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완전히 깨어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라고 노이만의 존재를 평가함과 동시에 천재들의 광기 어린 욕심과 어린애 같은 도덕적 무지를 언급합니다.
그는 그래서 그 기계를 만들었다. "이런 종류의 장치는 아주 획기적으로 새로운지라 실제 작동된 후에야 쓸모의 상당 부분이 선명해질 거요." 그는 알았던 것이다. 진짜 문제는 기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임을... 우리가 이 기계에 붙인 세례명은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기'였다. 짧게 하면, 매니악 Maniac. _2부 가운데
이 책의 표제인 <매니악>은 1946년 폰 노이만 구조로 제작한 최초의 컴퓨터 이름입니다. 폰 노이만은 이 기계에 인간의 사고구조를 결합할 생각을 하는데 지금의 인공지능(AI)의 시초가 됩니다. 2부의 내용 가운데는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같은 다소 섬뜩한 예언 같은 문장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천재 폰 노이만은 2024년을, 그리고 더 먼 미래까지도 보는 사람이었을까요.
<매니악>은 마침내 3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그리고 한국형 인공지능 한돌과의 고별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세돌이 남긴 말, "세계 최고가 되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까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매니악>의 끝을 장식합니다.
멋진 작품입니다. MANIAC.
2025.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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