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읽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는 미국의 소설가 팀 오브라이언(Tim O'Brien, 1946-)의 대표작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The Things They Carried>입니다. 1990년에 출간한 장편소설로 당시 전쟁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반자전적 이야기들을 엮은 작품입니다. 2010년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현대 전쟁 소설의 고전"이라고 평했습니다.
책의 표제에서도 느껴지듯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에서는 전쟁 소설에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대단한 서사나 메시지보다는 평범한 미군 보병의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과 관련한 전후 일련의 시간들에서 벌어지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이 단편처럼 연작 소설 형식으로 이어집니다.
무언가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이를테면 지미 크로스 중위가 마사에 대한 사랑을 구부정하게 지고서 언덕을 오르고 진창을 건너던 것처럼 그걸 짊어진다(hump)는 뜻이었다. (p.18)
첫 번째 에피소드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에서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사진과 편지를 비닐에 넣어 군장 맨 밑에 두고 매일 밤 꺼내보는 군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싸운다는 사명감과 거룩한 부담을 짊어지고 전쟁에 임하는 것일까요. 전쟁터의 군인 거의 모두가 '사진'을 짊어졌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억척스러웠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갖는 온갖 감정의 수하물을 가지고 다녔다. 비탄, 공포, 사랑, 갈망ㅡ이것들은 형태가 없었지만 무형이어도 나름의 질량과 비중이 있었고 유형의 무게가 나갔다. (p.37)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가운데는 무형의 것들도 있습니다. 비탄, 공포, 사랑, 갈망 외에도 각자의 평판, 군인으로서의 체면, 억눌러둔 비겁함, 숨으려는 본능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부담으로 짊어지고 전장에 나선 군인들에 대해 팀 오브라이언은 "그들은 쪽팔려 죽지 않으려고 죽었다."(p.38)라고 표현합니다.
진실한 전쟁 이야기에서 교훈은, 만약 교훈이란 게 있다면, 옷감을 이루는 실과 같다. 그것은 한 올만 고이 골라낼 수 없다. 그 의미를 추출하려면 더 깊은 의미를 헤집어놓아야 한다. 그러면 결국, 정말로, 진실한 전쟁 이야기에 관해 "이런"이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남지 않을 것이다. (p.99)
일곱 번째 단막 「진실한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은 목차를 보다 제일 먼저 펼쳐 읽은 부분입니다. 진실한 전쟁 이야기... 뭔가 특별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진실한 증인은 말이 없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그것도 군인으로 참전했던 사람이 쓴 전쟁에 관한 책은 그래서 다른 전쟁 소설들과 결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진실이다. 이야기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그것이 이야기가 하는 일이다. 시신들이 생명을 얻는다. 죽은 이가 말하게 만들 수 있다. (p.259-266)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의 화자는 저자인 팀 오브라이언 자신이며 작품 속 이름도 동일합니다. 40대가 되어 이 책을 쓰고 있는 그는 이야기를 통해 죽은 이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영원히 살아간다고,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2025.1.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맥 매카시의 「로드 The Road」를 읽고 (0) | 2025.01.31 |
---|---|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를 읽고 (0) | 2025.01.30 |
폴 존슨의 「지식인의 두 얼굴 Intellectuals」을 읽고 (0) | 2025.01.28 |
벵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 Maniac」을 읽고 (0) | 2025.01.27 |
장 크리스토프 뤼팽의 「불멸의 산책: 내 마음 같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를 읽고 (0) | 2025.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