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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벵하민 라바투트(Benjamin Labatut)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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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하민 라바투트(Benjamin Labatut)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고


문학? 과학? 실제? 허구? 특이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제목처럼 무엇인가를 이해하길 멈추어야만 읽히는, 흥미로운 글입니다. 

 

네덜란드 태생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Benjamin Labatut, 1980)의 세 번째 책, 논픽션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When We Cease to Understand the World>입니다. 가디언(The Guardian)에서는 이 책을 "독창적이고 복잡하며 매우 혼란스럽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별개인 듯하지만 큰 틀에서 연결된 다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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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수록된 이야기 「프러시안블루」의 첫 문장을 읽고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시안화물, 프러시안블루, 치클론 A, 타르타리 같은 낯선 화학물질 이름이 연이어 나오는데 구글링 하느라 이야기 흐름을 놓칩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밤 건강진단에서 의사들은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했다. _「프러시안블루」 첫 문장

 

저자 벵하민 라바투트는 이들 화학물질에 얽힌 역사 속 사연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배경지식에 따라 받아들이는 폭이 다를 텐데 저는 조금 더 그릇을 넓혀야 할 듯합니다. 

 

마치 이 색깔의 화학 구조에 들어 있는 무언가가 폭력을 유발하기라도 하는 듯 프로이센군의 제복에서도 빛난다. _「프러시안블루」 

 

 

표제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입니다. 

 

1927년 발표한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에는 양자역학 창안에 대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습니다. 2022년에야 양자역학 분야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으며 이론적 안정성을 인정받지만 100년 전엔 대체 어떤 말로 양자를 설명할 수 있었을까요. 

 

전자는 파동도 입자도 아니었다. 아원자 세계는 그들이 이제껏 알고 있던 그 무엇과도 달랐다. 확신이 어찌나 깊던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무언가가 그에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_「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세상 이치의 전모가 온전히 드러난, 황홀한 깨달음의 순간이 하이젠베르크에게 찾아 온 것입니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자 또한 세상의 사실들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와 정신적 연결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자연의 미시적 측면을 묘사하려면 전혀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_「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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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최대의 강적으로 알려진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결국 끝까지 과학의 새로운 지대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지식들은 모두 과거 어느 때에는 순순히 이해될 수 없는 지적 파열의 순간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았으나 젊은 세대로부터는 완전히 소외당했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공격에 대해 보어가 내놓은 답변을 정답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신에게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_「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두 번째 이야기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에는 이 책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의 주제와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과학과 문학, 어쩌면 세상 모든 학문과 예술은 '창조'와 같음을 알게 됩니다. 

 

"나의 관심은 결코 달 너머 우주에 있는 것들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사이로 누벼진 실들을,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좇았다. 그곳이야말로 과학의 새로운 빛이 비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슈바르트실트는 무엇을 하든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_「슈바르츠실츠 특이점」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비로소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저자 벵하민 라바투트는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작은 아이조차 손가락 하나로 태양을 가릴 수 있다니 우주는 얼마나 신기하고 광학과 원근법의 법칙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_「슈바르츠실츠 특이점」 


2024.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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