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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의 「나는 태어났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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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의 「나는 태어났다」를 읽고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 1936-1982)의 산문집 <나는 태어났다 Je suis né>입니다. 조르주 페렉은 1967년 레이몽 크노(Raymond Queneau, 1903-1976)가 주도하는 프랑스 잠재문학실험그룹 '울리포(OuLiPo)'의 멤버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덕분에 '형식적 제약'을 따르는 특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문학과 수학의 연결, 울리포(OuLiPo)ㅣ프랑스 잠재문학실험실

문학과 수학의 연결, 울리포(OuLiPo)ㅣ프랑스 잠재문학실험실 ◆ 울리포(OuLiPo) 울리포(OuLiPo)는 프랑스의 실험문학집단입니다. 작업실, 문학, 잠재성을 뜻하는 세 개의 프랑스어 단어에서 첫 음절

2020ilovejesus.tistory.com

 

안타깝게도 조르주 페렉이 1982년 45세에 폐암으로 요절하면서 짧은 생애동안 발표한 십여 편의 작품만 남았습니다. 이후 흩어져 있던 원고들을 모은 유작들이 출간되는데 <나는 태어났다>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페렉의 대표작으로는 메디치상을 수상한 <인생 사용법(1978년)>이 있습니다. 부제는 '소설들'로 99개의 장, 7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입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퍼즐 맞추기처럼 조각난 정보를 모아내 해석하도록 쓰였다고 하는데 내용이 궁금합니다. 읽을 책 리스트에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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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났다>에는 표제작을 포함한 총 10편의 짧은 산문ㅡ정확하게는 메모, 연설, 비평, 편지, 기사, 서평 등 다양한 글ㅡ이 수록돼 있습니다. 이 글들이 조르주 페렉의 작품활동에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나는 태어났다. 나는 1936년 3월 7일에 태어났다. 몇 달째 이 문장을 쓰고 있다. 34년 6개월 전부터, 지금까지도! _「나는 태어났다」 가운데 

 

자서전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큰 어려움인지 표제작 「나는 태어났다」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조르주 페렉은 34년간 첫 문장만 적어놓고 그 다음 할 말을 찾고 있습니다.  

 

내 이야기는 명료하고, 내가 느끼는 막막함은 속임수다. (...) 제아무리 신중을 기한다 해도 계속 뭉그적거릴 수는 없다. 그래서? 어쩌면 막대한 임무 앞에 주저앉게 될지도. 그 임무는 한 번 더 실타래를 끝까지 푸는 것. _「나는 태어났다」 가운데  

 

방대한 인생사의 실타래를 푸는 일이 자서전 쓰기의 첫 단계이며, 그 때문에 포기하게 될까 봐 염려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속임수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저 글이 써지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일 수도 있을까요.   

 

 

언젠가 제 생일이나 개인적으로 특별한 날짜를 구글링해본 적이 있는데 구글이 없던 시절, 조르주 페렉은 자신의 생일에 일어난 일을 알아보기 위해 국립도서관에 갑니다. 1936년 3월 7일 페렉이 태어나던 그날, 나치 독일이 비무장 지대 라인란트에 군대를 진입시킨 날이라고 나옵니다. 

 

국립도서관에 가서 그날 치 일간지 몇 종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만 한다. 오랫동안 나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것이 36년 3월 7일이라고 생각했다. _「나는 태어났다」 가운데

 

어쩌면 조르주 페렉은 해석되지 않는 자신의 삶의 한 부분에 어떠한 비밀이나 암호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여기며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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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죽기 전에 해야만 할 것 같은 몇 가지」에는 서른일곱 개의 버킷리스트가 나와있습니다.

 

시선이 머무는 리스트 몇 개를 골라봅니다. 9번에 아주 오랫동안 해외 대도시 살기라고 쓰고 괄호 해서 '런던'이라고 썼습니다. 22번에는 헨리 제임스 읽을 시간 갖기가 있고 역시나 괄호 해서 '꼭'이라고 적혀있습니다. 

 

 

3월 7일생인 조르주 페렉의 작품에서 3과 7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리스트 37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1977)와 친해지기 역시 페렉의 주의를 재차 환기시킵니다. 의도적으로 멈춘다... 의도적으로! 


2024.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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