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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릴리트 Lilit」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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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릴리트 Lilit」를 읽고


1981년에 출간된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단편소설 모음집 <릴리트 Lilit and other storys>입니다. 총 서른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자전적 서사를 비롯해 과학, 신화 등 폭넓은 소재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이들 단편을 크게 《가까운 과거(12편)》, 《가까운 미래(15편)》, 《현재(9편)》라는 3개 범주로 나눕니다. 과거엔 이러했으며, 미래는 이러할 것이니, 현재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의도로 프리모 레비의 분류 기준을 이해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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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릴리트」가 수록된 《가까운 과거》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물연구가 담겨 있습니다.

 

첫 작품으로 실린 프리모 레비에게 유언을 남긴 폴란드 출신 의사 라포포트와의 일화이자 그에게 헌사하는 단편인 「카파네우스」도 인상적입니다. 동료의 유언을 잊지 않고 성실히 이행한 프리모 레비를 그가 하늘에서 보고 있겠지요.

 

 

「릴리트」는 폭우로 수용소에서의 노동이 잠시 중단되고 서술자 '나'와 목수인 티슐러(Tischler)가 함께 커다란 금속 튜브 안에서 비를 피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마침 나이도 생일도 같은 두 사람은 자축의 의미로 사과 반쪽을 나눠 먹으며 티슐러가 들려주는 릴리트ㅡ유대신화에서 하와 이전에 창조된 인류 최초의 여성ㅡ 전설을 듣게 됩니다. 

 

언젠가 구원자가 오면 그가 릴리트를 죽일 거고, 신의 탐욕도 우리의 유배생활도 끝이 날 거야. 그래, 너와 나의 유배생활도 말이야. 마젤 토브 Mazel tov, 행운을 빌어." _「릴리트」 가운데  

 

티슐러에게 사과를 선물 받고 행운이라는 기도도 선물 받은 '나'는 그렇게 생환합니다. 또한 릴리트 신화는 단지 유대인들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가 처한 상황을 상징하기도 하는 듯 중의적인 이야기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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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수록된 단편 중 「암호해독」에서는 여전히 외벽 낙서 등에 나치즘의 구호가 난무하는 현재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읽는 사람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심각한 전체주의의 폐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파시즘적 구호만이 아니라 벽에 적힌 모든 구호가 나를 슬프게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전부 부질없고 어리석기 때문이며 그 어리석음이 인간사회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_「암호해독」 가운데  

 

적어도 이러한 낙서에 관한 한 유대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벽은 악당의 종이"라는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2024.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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