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멍키스패너」를 읽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생환 기록을 담은 <이것이 인간인가>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장편소설 <멍키스패너 La chiave a stella>입니다. 이 작품은 저자가 전업작가로서는 처음 발표한 장편으로 출간된 그해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인 스트레가상(1978년)을 수상합니다.
<멍키스패너>는 프리모 레비의 이전 저서들과 달리 자전적 이야기라기보다는 순수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픽션입니다. '일(노동)'에 대한 성찰을 준다는 점에서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시되는 지금 시대에 중요한 메시지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멍키스패너>의 주인공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떠돌이 조립공 파우소네입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보고 싶고, 즐겁게 일하고 싶고, 버는 돈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그 일을 택했고 자신의 운명에 매우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누군가와 자신의 삶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온 세상의 조선소, 공장, 항구를 돌아다니는 이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내가 원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정글이나 사막에 가보는 것을 꿈꾸듯 나도 그랬지요. 다만 나로서는 꿈이 진짜로 실현되는 것이 좋아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부자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관광객이 되거나, 아니면 조립공이 되는 것이었지요. _본문 가운데
파우소네는 자신의 일을 통해 꿈을 실현합니다.
작위作爲 보다는 부작위不作爲로 실수하는 것이 낫다. 자신의 운명을 조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불확실한 마당에 다른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이 낫다. / 삶의 전환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향수는 있겠지만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고 나는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이다. 삶은 사십 대에 시작한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좋다. 나는 쉰다섯 살에 시작할 것이다. 아니면 다시 시작할 것이다. _본문 가운데
프레모 레비의 책 속에는 '한 문장'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문장들을 통해 어리석고 고뇌하는 독자들을 깨우고 위로합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은 지상의 행복에 가장 훌륭하게 다가가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만이 알고 있는 진리이다. 그 무한한 영역, 직업의 영역, 일상적인 일의 영역은 남극 대륙보다 덜 알려져 있다. _본문 가운데
'소수의 특권'이라고 할 만큼 사람들이, 특히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일을 통해 행복을 누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대부분은 파우소네라는 인물을 통해 그 특권을 부러운 듯 바라볼 뿐이지만 그 가운데 몇몇은 함께 행복을 누리는 영광을 보겠지요.
냉소적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멍청한 수사학으로, 직업을 폄하하고, 비천한 것으로 묘사한다. 마치 일할 줄 아는 사람은 정의상 하인이며, 반대로 일할 줄 모르거나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많은 직업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_본문 가운데
그러기 위해서는 직업, 일, 노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부터 교정해야겠지요.
분신처럼 허리춤에 꽂은 멍키스패너는 파우소네의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저도 저만의 <멍키스패너>를 찾고싶네요.ㅡ이미 찾았는데 모른 채 살고 있는지도.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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