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단편선 「밤이 오기 전에」를 읽고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단편선 <밤이 오기 전에>입니다. 총 열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는데 프루스트가 청년 시절 써 내려간 초기 작품들입니다. 이 책은 번알못인 제가 봐도 번역이 정말 잘 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작을 탄생하게 한 초기 습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위대한 소설가가 되기까지 그가 청년 시절 짊어져야했던 고뇌와 절망, 문학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프루스트 특유의 긴 문장에 어느샌가 익숙해진 듯합니다. 조심스럽고 사려깊고 섬세한 프루스트의 성정이 투영된 긴 문장들. 이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출발해도 될지, 멀고도 먼 '스완네 집'입니다.
갓 스무살을 지난 프루스트의 초기 단편, 1893년에 쓰인 표제작 「밤이 오기 전에」입니다. 첫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쿵하고 울립니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라 찬탄받는 프루스트이니 저 같은 일반 독자에겐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려운 말을 해야 할 때 최대한 부드럽게 말함으로써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더 견디기 쉽게 하려는 이의 말씨로 그녀가 말했다. _「밤이 오기 전에」 가운데
이런 문장을 원어로 읽고 같은 감동을 받으려면 프랑스어를 얼마나 배워야 가능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간색이라 여기는 사물을 빨간색으로 본다고 해서 그것을 보라색으로 보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_「밤이 오기 전에」 가운데
죽음을 앞둔 여인 프랑수아즈가 이성 친구인 레슬리에게 하는 말입니다. 동성을 사랑하는 자신의 '죄'를 죽음 앞에서야 친한 친구에게 고해하듯 이야기합니다. 레슬리는 연민과 이해의 눈물을 흘리고 프랑수아즈도 그제야 마음껏 눈물을 흘립니다.
「밤이 오기 전에」의 마지막 장면에서 프루스트가 써내려간 문장이 독자도 울립니다.
"그 순간만큼 그렇게 아파했던 적이, 또 좋았던 적이 없다."
프루스트는 이 짧은 단편으로 진정한 공감과 위로가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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