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의 「지복의 성자」를 읽고
인도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 1961)가 2017년 발표한 장편소설 <지복의 성자 The Ministry of Utmost Happiness>입니다. 저자는 1997년 데뷔작 <작은 것들의 신 The God of Small Things>으로 바로 그해 제29회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립니다.
이 책 <지복의 성자>는 아룬다티 로이가 꼬박 20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입니다. 인도 델리와 카슈미르 지역을 배경으로 약 70여 년을 오가며 펼쳐지는 장대한 이야기로 분량도 580여 페이지에 달합니다. 저자는 애틋한 심정을 담아 상처와 분열로 고통받는 인도의 민낯을 내부자의 시각에서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프타브는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그의 가족이 수세기 동안 살아온 터전에서 겨우 몇백 야드 떨어진 곳에 있는 평범한 문을 지나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 _본문 가운데
<지복의 성자>의 주인공 아프타브(안줌)는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제3의 성, 히즈라입니다. 태어났을 때 이미 그것을 알았던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에도 아프타브는 본성은 여성, 외형은 남성으로 자라납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살 수 없었던 15세의 아프타브는 히즈라들이 모여사는 콰브가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안줌이라는 이름을 새로 받고 여성으로 외과적인 수술을 받지만 사기를 당해 몸은 엉망이 됩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이었다. 한낱 낄낄거림으로라도 역사에 존재하는 건 부재하는 것, 완전히 누락되는 것과 천지 차이였다. 그 낄낄거림은 결국 미래라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오르는 하나의 발판이 되었으니까. _본문 가운데
안줌은 고아의 엄마가 되어주고, 종교 폭동을 겪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콰브가를 떠나 떠돌고, 공동묘지에서 노숙을 하며 삶을 이어갑니다. 유일하게 안줌이 의지한 대상은 성인 사르마드ㅡ'지복의 성자이자, 위로받지 못한 자들의 성인이며, 정확히 규정될 수 없는 자들, 신자들 속의 신성모독자, 신성모독자들 속 신자의 위안'이라 설명ㅡ입니다.
제아무리 교묘하게 감춰져 있어도, 그녀는 외로움을 알아보았다. 자신에게 그의 그늘이 필요하듯 그에게도 자신의 그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필요'가 상당량의 잔혹함을 수용할 수 있는 창고임을 경험을 통해 배워왔다. _본문 가운데
소외된 자들 가운데 더욱 외면당하는 히즈라의 삶은 그늘로 점철된 그것입니다. 공동묘지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안줌은 기도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습니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지복의 성자> 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영원히 실현되지 못할 공연을 위해 연습을 하는 것, 어쩌면 그게 인생이 아닐까? 인생 대부분의 결말이 그런 식이 아닐까?"(본문 p.202) 안줌이 일생을 다해 연습한 이 삶이 바로 살아있는 동안은 실현되지 못할 공연, <지복의 성자>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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