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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에쿠니 가오리의 「개와 하모니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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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개와 하모니카」를 읽고


2000년대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1964)는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책으로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신드롬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팬이 생겼습니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가 2018년 발표한 단편집 <개와 하모니카>로 가장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총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 있는데 작가의 전작들처럼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잔잔하고 감성적인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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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이번에도 놀라지 않았다.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반은 기가 차고 반은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걸 아릴드도 잘 안다. 어릴 때부터 늘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 것에 서툴렀다. _본문 가운데 

 

표제작 「개와 하모니카」는 공항 국제선 도착 로비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남자 아릴드, 딸이 좋아하는 봉제인형 '햄'과 함께 여행에서 돌아오는 아내와 딸을 마중하러 공항으로 가는 겐지, 런던에 사는 딸에게 다녀오는 노부인 스미코, 업무상 출장을 다녀온 남성 신야. 이들은 국적과 성별, 연령은 다르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 스쳐 지나갑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또 서로 얽힌줄도 모른 채 어떤 순간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수십대의 관찰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여러 인물들의 사연이 느긋한 듯 속도감 있게 지나갑니다. 

 

물론 스미코에게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대화 내용이 쉽게 짐작됐다. 이를테면 전화기를 들자마자 축축한 목소리로 거들먹거리면서 "그럼, 잘 다녀왔지"라고 중얼거린 것은 상대의 첫마디가 "잘 다녀왔어요?"였기 때문일 테고, _본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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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 주변인을 관찰하고 그들의 사생활을 짐작하며 주제넘게 그들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예상대로 노부인 스미코입니다. 여행으로 상기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국제선 도착 로비에서 어딘가 스미코만이 홀로인 듯 외로워 보입니다. 3년 전 입주한 기다리는 사람 없는 고령자 주택이 스미코의 목적지이기 때문일까요.

 

노부인은 차에 타자마자 창문을 내리고 "저기"라고 말했다... 노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고"라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_본문 가운데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남성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스미코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누군가는 밀회를, 누군가는 반려동물과 재회하고, 누군가는 마중나온 가족을 만나고, 누군가는 수화물을 잃어버리고, 누군가는 가족 여행을 하고, 누군가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곳, 공항은 이야기가 탄생하기 아주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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