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주네(Jean Genet)의 희곡 「하녀들 Les Bonnes」을 읽고
1933년 프랑스 르망에서 벌어진 일명 '파팽 자매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한 희곡, 프랑스 작가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가 1947년에 발표한 <하녀들 Les Bonnes>입니다. 파팽 자매 살인사건은 7년간 일한 주인집 모녀를 쌍둥이 하녀들이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 범인들의 심리를 파헤치고자 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 기획 단계에서 이 사건을 참고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쌍둥이 하녀 솔랑주(언니)와 클레르(동생)는 집주인 마담이 집을 비우면 각자 마담과 하녀 역할을 맡아 연극놀이를 합니다. 부유층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된 놀이는 점차 불평등한 계급 관계를 드러내게 되고 하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한 처지를 자각하게 합니다.
클레르
(마담을 흉내 내듯 심술궂게 늘어놓으며) 수건을 다오! 양파를 까거라! 유리창을 닦아라! 다 끝났어. 이제 세상을 내 마음대로 주무르겠어. _본문 가운데
연극놀이를 하며 마담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마담에게 투사하기도 합니다.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습니다. 순종적인 하녀들, 무탈한 일상, 마담과 하녀라는 피상적인 관계의 기저에 무시무시한 분노와 경멸이 자리 잡고 있음을 쌍둥이 자매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솔랑주
마담은 하나하나 우리의 비밀을 벗겨 내고 있어. 마담은 우릴 조롱하고 있어. 마담은 모든 걸 알게 될 거야. _본문 가운데
쌍둥이 하녀들의 연극놀이가 회를 거듭하며 하녀로 일하는 자신들에 대한 혐오를 점차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선망하지만 그곳에 이르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빚어낸 비뚤어진 시각, 더 근원적으로는 불평등한 사회와 마담에 대한 분노는 결국 자신들이 선망하는 대상을 해치는 결과를 낳습니다.
클레르
난 하인들이 싫다. 난 그 천하고 추악한 족속을 싫어한다. 하인들은 인간에 속하지 못한다. 그들은 흘러 다니는 악취다. 난 널 보면 구역질이 난다. _본문 가운데
자매들은 마담을 독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연극이라는 매체의 특성이 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는 점을 이용해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치료 목적의 사이코드라마가 떠오르네요.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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