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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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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고


'홀로코스트 생환자'라는 수식어가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유서와도 같은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I sommersi e i salvati>입니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가 1987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인 1986년에 발표됐습니다. 유대인 학살에 관한 서적 가운데 단연 독보적이라는 평을 받는 작품입니다. 

 

이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그러하기에 어떤 존재가 되려고 '애써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또한 책의 띠지에 적힌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한다'라는 글귀처럼 소위 제삼자ㅡ홀로코스트에 있어서는 독일 국민들ㅡ의 무관심 역시 결코 무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우선 책의 제목에서 '가라앉은 자'는 유대인 수용소ㅡ라거ㅡ에서 희생된 사람, '구조된 자'는 생존자들과 라거 밖의 모든 관련자들을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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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전체 8개의 장으로 구성돼있습니다. 그 가운데 「2장 회색지대」와 「3장 수치」가 여타 홀로코스트 증언록들과 이 책이 구별되게 하는 주요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 수용소에 입소하는 이들에게 가혹한 린치를 가하는 자들은 먼저 입소한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라는 공동체의식이나 함께 학대에 저항하고자 하는 동맹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적은 주변에도 있었지만 내부에도 있었다. "우리"라는 말은 그 경계를 잃었고...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라던 동맹은 없었다. 반면에 수천 개의 봉인된 단자들만이 있을 뿐이었고 이 단자들 사이에는 필사적이고 은밀하고 지속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_「2장 회색지대」 가운데

 

 

수감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욕, 프리모 레비는 유대인 게토의 위원장인 룸코프스키라는 인물을 예로들어 설명합니다.

 

모든 절대 왕좌의 발취에는 우리의 룸코프스키와 같은 인간들이 한 줌의 작은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몰려든다. 이것은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_「2장 회색지대」 가운데

 

프리모 레비는 여기서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의 말을 인용합니다. '장기 복역자들, 생존자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축하하는 그 사람들 대부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프리두르키(pridurki)였다', 프리두르키는 복역 기간 중 어떤 형태로든 특권의 지위를 획득한 포로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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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수치」를 읽으면서 '아!' 하는, 그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가라앉은 자'들에 대한 시각을 얻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원칙이었건 예외였건 '구조된 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ㅡ그것을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ㅡ을 심어준 근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프리모 레비의 수치는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라거의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 바닥을 친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고,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 _「3장 수치」 가운데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포함한 홀로코스트 증언 문학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합니다.

 

"이것은 유럽에서 일어났다. 문명화된 민족 전체가 어릿광대를 따르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히틀러는 복종을 이끌어냈고, 파국이 닥칠 때까지 칭송되었다.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이다.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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