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르 바예호(Cesar Vallejo)의 시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을 읽고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Cesar Vallejo, 1892-1938)의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입니다. 세사르 바예호는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와 함께 20세기 중남미의 거장 시인으로 꼽힙니다. 그는 생전에 두 권의 시집, <검은 전령 Los heraldos negros(1919)>과 <트릴세 Trilce(1922)>를 발표하고 사후 1939년에는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와 <인간의 노래>가 출간됩니다.
이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에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 선별한 총 122편의 시가 수록돼 있습니다.
살다 보면 겪는 고통. 너무도 힘든... 모르겠어. / 신의 증오가 빚은 듯한 고통. 그 앞에서는 / 지금까지의 모든 괴로움이 / 썰물처럼 영혼에 고이는 듯... 모르겠어. _「검은 전령」 가운데
<검은 전령 Los heraldos negros>에 수록된 시입니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세사르 바예호의 시는 체 게바라(Ernesto Guevara, 1928-1967)의 유품 '녹색 노트'에 가장 많이 필사된 시라고 합니다. 정치적 혁명가의 심장을 뛰게 한 세사르 바예호 시는 당대 문학적 흐름보다 항상 한 발 앞서 있었으며 그 자체로 20세기 혁명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혁명가들은 서로 통하나 봅니다.
"얘야, 어쩜 이렇게 늙어버렸니?" / 내가 늙었다고, 내 얼굴이 누렇게 떴다고 내 얼굴을 부여잡고 울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우십니다. 내가 소년처럼 있는 게 뭐 그리 좋으신 걸까요? _「좋은 의미」 가운데
<인간의 노래 Poemas humanos>에 실린 시입니다. 자식의 늙음은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자식의 늙음이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어떤 것의 '상실'을 상징합니다. 자식의 늙음 속에서 자신의 더 늙음과 죽음마저 보는 것이겠지요.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 항상 산다는 것이 좋았었는데, 늘 그렇게 말해왔는데. // '그리도 많이 살았건만 결코 살지 않았다니!' / 그리도 많은 세월이었건만 또 다른 세월이 기다린다니!" _「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 가운데
<인간의 노래 Poemas humanos>에 실린 또 다른 시, 표제작 이기도 합니다. 이 시에서는 살아온, 살아갈 세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세사르 바예호는 어떤 일로 인생이 싫어졌을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그런 이유들과는 조금 다른 범주에 속한 이유겠지요. 그러길, 독자로서는 바라봅니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라는 시에서는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 음습한 포유동물, 빗질할 줄 아는 / 존재라고 / 공평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음습한', '빗질을 할 줄 아는', 이 두 가지 시구가 시의 해석에 키를 쥐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원어로 쓰인 시를 읽고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스페인어 실력이 필요할까요. 세사르 바예호의 시를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2024.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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