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제임스 설터(James Salter)의 「아메리칸 급행열차」를 읽고

728x90
반응형


제임스 설터(James Salter)의 「아메리칸 급행열차」를 읽고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설터(James Salter, 1925-2015)가 1988년 발표한 첫 단편집 <아메리칸 급행열차>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총 열한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는데 진정한 단편답게 모든 작품이 낯설고 어렵습니다. 뭔가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반복해 읽으면 새로운 의미가 드러나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메리칸 급행열차>에 수록된 작품들은 그러니까 작가와 독자가 함께 써 내려가는 소설입니다. 

 

728x90

 

 

설터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밝힌 표제작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입니다. 인생의 성공궤도에 막 발을 들인 두 젊은 변호사가 함께 여행을 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립니다.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 그들의 뒤틀린 욕망과 치기 어린 태도를 설터는 건조하지만 예리한 문장으로 써내려갑니다. 

 

그들은 멋지고 개성적인 가구들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고, 일요일이면 정오까지 늦잠을 잤다. 그들은 법률사무소의 말단 변호사였다. 똑똑한 주니어 변호사들이 그들 바로 위에 있었다. 파트너, 어소시에이트 같은 변호사들은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_「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가운데

 

처음엔 저항없이 읽어나갔는데 두 번째로 다시 읽을 땐 '층위'가 인식됩니다. 상, 하로 구분된 다른 층위의 인간상과 삶. 역시 예술가ㅡ작가ㅡ의 미덕은 관찰력입니다.   

 

 

"위층에 별도의 방이 있습니다." 매니저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프랭크가 말했다. "그런데 이봐요, 당신네 바텐더는 날 알지 못해요." "그 친구가 실수했습니다." 매니저가 말했다. _「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가운데

 

술집에서도 '당신네 바텐더'가 아닌 '매니저'와 상대하길 원하는 그들, 그리고 '위층'의 별도 공간을 자신들의 자리라 여기는 그들입니다. 모든 장면에서 층위가 암시된다는 점을 인지하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두 번쯤 다시 읽습니다. 제임스 설터가 굉장한 통찰이 담긴 작품이라고 소개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반응형

 

 

짧은 이야기 속에 온 인생을 빼곡히 담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 「20분」도 좋았습니다. 주인공 제인 베어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죽음의 위기에 놓인 20분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극심한 부상을 입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건 알았다. 그녀는 시간이 약간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분. 사람들은 늘 그렇게 말했다. _「20분」 가운데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 누군가 올 것이다. 와야 했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인생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줄 알았다. "삶은 우릴 때려눕히고 우린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게 전부야." _「20분」 가운데

 

시공간을 초월하고 육체에 대한 인식마저 초월해 버린 제인 베어의 마지막 20분, 그녀는 자신을 때려눕힌 삶에 맞서 사력을 다해 일어나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20분」의 백미는 마지막 문단입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 상징과 암시가 응축된 문장들, 책을 덮고나서도 여운이 짙게 남는 소설입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매력있습니다. 


2024.7.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