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 시인의 시집 「어떻게든 이별」을 읽고
2010년 첫 시집 <상처적 체질> 출간 이후 다시 6년 만에 발표한 류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입니다. 비주류 이미지를 대놓고 풍기는ㅡ혹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고자 하는ㅡ 류근 시인의 이번 시집은 작품 한편 한편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립니다. <상처적 체질>에서 보다 <어떻게든 이별>에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진실한 시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내면의 한결같지 않음을 보는 듯합니다.
<어떻게든 이별>에서는 특히 두 편의 시를 유쾌하게ㅡ시집의 표제와는 판이하게 다른 후기를 남기게 되네요ㅡ 읽었습니다. 「이빨論」과 「불현듯」. 재미있는 상상력에 웃음이 나면서도 그 이면에 잔잔한 울림이 있습니다.
놈들이 도열해 있을 땐 / 도무지 존재감이란 게 없는 것이다 / 먹잇감 떼로 모여 작살내고 / 한 욕조의 거품으로 목욕하고 // 그러나 한 놈 탈영하고 나면 그 자리 너무나 거대해져서 _「이빨論」 가운데
언젠가 치과 홍보물에서 눈썹이 한쪽 없고, 앞니도 하나 없는 사람의 사진을 올려두고 이 사진에서 무엇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냐고 묻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진 치아를 먼저 언급하겠지요. 철학적(!)이기까지 치아가 이런 근사한 시의 화두로까지 등장했습니다.
「문학과사회」 가을호를 읽고 있는데 / 모기 한 마리가 // 퓨슛, 날아들었다 / 나는 펼쳤던 책장을 텁, / 덮는 것으로 // 책장을 다시 펼쳤을 때 / 데칼코마니 포즈로 번져 죽은 모기 시신 아래 / 관, / 이라고 씌어진 시 제목이 보였다 // 이로써 불현듯, / 한 장례식의 돌아오지 못할 인연을 맺은 것이다 _「불현듯」 가운데
덮은 책 사이에 껴 죽은 모기에게 헌정하는 시입니다. 두 사람의 시인이 자신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으니 그 모기는 '그(THE)' 모기가 되었습니다. 불현듯 열린 장례식에 이 시의 독자로 참여하게 된 저도 영광입니다.
그럼 안녕히.
2024.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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