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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상처적 체질ㅣ류근 시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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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상처적 체질ㅣ류근 시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류근 시인이 2010년 발표한 첫 시집 <상처적 체질>입니다. 출판사에서도 시로 등단한 지 18년 만에 첫 시집을 펴낸, 지면으로는 만나보기 어려운 시인으로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류근 시인은 고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 원작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력을 보니 시인에게서 어딘가 고독한 괴짜로움이, 저는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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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첫 페이지에 적힌 시인의 말입니다.

 

진정한 지옥은 내가 이 별에 왔는데 / 약속한 사람이 끝내 오지 않는 것이다. / 사랑한다고, /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_2010년 4월, 류근

 

반해버립니다.

 

 

<상처적 체질>에는 3부에 걸쳐 총 70편의 시가 수록돼 있습니다. 맘에 와닿는 작품 가운데 「생존법」이 있습니다. 읽다보면 제 주변의 가까운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는 시에 숨이 막혀 생존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다 // 아내가 새벽 기도 가자고 하는 날부터 새벽에 귀가한다 // 하라는 대로만 하면 여기가 인쇄소 식자공 작업장도 아니고 // 내 인생이 내 인생인가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다 보면 나는 반짝이는 외로움과 자주 만나게 되고 길의 맨 가장자리로만 걷게 되고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직장은 자주 바뀌고 봄에 집에서 출근했는데 갑자기 해고 통지서 받은 오후에 눈발이 흩날리기도 하는 것이다 _「생존법」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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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경험이 있어 「시인의 근황」에 담긴 시인의 '부아'에 더 공감이 됩니다. 시인 20년차를 지나가는 류근 시인은 지금 자신의 안부를 묻는 후배에게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네요. 이 시를 넌지시 건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 좀 자상하게 일러주면 안 되나?

 

괜한 걸 물었다가

괜히 상처받는 이 버릇

 

시인에게 근황을 묻지 말자

 

_「시인의 근황」 가운데

 

 

「길」에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여섯 살 아이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생의 마지막을 위한 장소로 걸어간 개의 발자국이 지금껏 시인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잃어버린 개의 밥그릇을 안고 엉엉 울던 어릴 적 제모습도 여전히 생생합니다.

 

여섯 살 눈 내린 아침 / 개울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 늙은 개 한 마리 / 얼음장 앞에 공손히 귀를 베고 누워 / 지상에 내리는 마지막 소리를 견뎠을 / 저문 눈빛의 멀고 고요한 허공 _「길」 가운데


2024.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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