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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하얀 성」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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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하얀 성」을 읽고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튀르키예의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이 1985년 발표한 소설 <하얀 성>입니다. 책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먼저 읽고, 독해를 본 후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이해하긴 역시 후자가 더 수월했지만 어딘가 모호한 전설이나 꿈 이야기를 듣는 듯한 처음이 이 책의 매력을 더 잘 느끼게 합니다.

 

<하얀 성>은 알 수 없는 존재와 사상, 절대 다다를 수 없지만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갈망을 17세기 이탈리아 학자 '나'와 오스만 제국의 '호자'를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나인가?'라는 실존 철학적인 질문을 가지고 동양과 서양이라는 가치를 되짚어보는 역사서, 이 책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해 봅니다. 오르한 파묵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주제가 담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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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학자인 '나'는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향하던 중 오스만 제국 함대에 포로로 잡혀 이스탄불에서 '호자'의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호자에게 '모든 것', 그러니까 천문학, 의학, 공학 같은 모든 학문과 이탈리아의 강, 호수, 구름, 바다, 천둥에 대해 가르치는 노예입니다.   

 

선장이 그렇게 겁에 질려 버리면서부터 내 인생이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튀르키예 사람인 '호자'는 '나'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두 사람이 쌍둥이라는 소문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둘은 함께 배우고, 책을 쓰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동지애가 싹트고 나아가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됩니다.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와 닮아 있었다. 내가 저기에 있다니! 

 

 

호자는 종종 "왜 나는 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스스로 자문하기도 하고 '나'에게 묻기도 합니다. '나'는 호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말로 대답을 피해갑니다. 왜 우리는 서로가 될 수 없는가, 그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질문으로 바꿔 읽어도 그 뜻에 변함이 없을 겁니다. 

 

"왜 나는 나일까?" 나는 호자에게 왜 그가 그인지를 모른다고 말한 후, 그 문제는 내가 살던 나라의 사람들이 굉장히 자주 묻고, 날이 갈수록 더 많이 묻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의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가 기대하는 대로 대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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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을 계기로 '호자'와 '나'는 서로의 신분을 바꾸어 '호자'는 이탈리아에 가고, 노예인 '나'는 호자의 신분으로 튀르키예에 정착합니다. 이곳에 남은 '호자가 된 나'는 그를 그리워하며 이 이야기를 <하얀 성>이라는 책으로 쓰게 됩니다. 

 

그는 내가 되고, 나는 그가 되기를 원했다. // 내가 그를 풀어 줄 것이고, 그는 내 자리를 차지하여 내 나라로 돌아갈 거라고 하면서, 그 후 그가 그곳에서 할 일들을 즐겁게 설명했다. 

 

 

수기 형식으로 흘러온 '나'의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하얀 성>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하고 상상한 것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며 '그'와 '그들'을 추억합니다. 

 

'그'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고, 이것이 나와 내 인생을 끝까지 불행하게 할 것임을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절대 혼자가 되어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하얀 성> 첫 페이지에 적힌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말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람을 만나  미지 혹은 미지에 준하는 매력적인 삶을 접하고 오로지 그의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 아니면 달리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나'와 '호자', 동양과 서양, 미지에 준하는 매력적인 사람들, '왜 나는 나인가?', <하얀 성>은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24.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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