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종이컵이랑 막대로 꽃 만들기, 장애인 재활 미술ㅣ콜롬비아 보고타
출근길에 직원용 출입구 바로 옆 잔디밭에서 뒹구는 깐델라(Candela)를 만났습니다. 등을 어찌나 열심히 비비는지 귀여워서 동영상을 찍으려 했더니 이내 멈춥니다. 신디에게 깐델라의 신상에 대해 물어봤는데 제가 알고 있는 정보랑 조금 다릅니다. 기관(DIVRI, 한-콜우호재활센터) 경비견으로 근무하다가 퇴직 한 노견이라고 들었는데, 한 번도 일 한 적이 없고 여기서 태어나 줄곧 기관 내에서 먹고, 자고, 노는 8살 강아지(?)입니다. 경비견이었던 것치고는 좀 게으르다.. 생각했는데 역시 깐델라는 타고난 복덩이네요.
오늘은 종이컵이랑 아이스크림 막대로 꽃을 만들어봅니다. 보통 수업 내용을 여러 개 생각해 뒀다가 그날 오시는 분들에 맞게 진행하는데 이번 타임에는 장애인 분들이 많이 오셔서 쉬운 아이템을 고릅니다.
콜롬비아(Colombia)에서는 한쪽 볼을 맞대고 뺨에 키스하는 베소(beso)가 일반적인 인사법입니다. 코로나 상황이기도 하고 일부 수강생 분들이 조금 과하게 인사하는 경우가 있어 저는 파견 초반에 신디에게 부탁해서 수강생분들이 제게 베소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유일하게 저와 베소를 나누는 두 친구가 있는데 다운증후군을 가진 20대 초반의 두 수강생입니다. 보호자분들이 이야기를 하셔도 베소를 하지 않으면 울거나 화를 내서 만날 때, 헤어질 때 베소를 나눕니다. 마침 이번 시간에 둘이 같이 왔네요. 오늘도 반갑게 인사 나눕니다.
종이컵 옆면을 문어다리처럼 8~10개 정도로 자르고 크레용으로 색칠합니다. 가운데는 해바라기 모양으로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아이스크림 막대를 테이프로 붙이고 초록색 색종이로 잎을 만들어 붙입니다. 수업시간에는 끝이 뭉툭하고 날이 무딘 어린이용 가위를 사용하는데 종이컵이 잘 잘라지지 않아 큰 가위로 제가 돌아다니면서 잘라드립니다. 수업 내내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며 웃는데 저도 대충 눈치껏 따라 웃습니다.
오늘 수업에 새로 오신 분(마를론)께는 어느정도 수준이신지 보기 위해 콩테(Carboncillo)를 드립니다. 휠체어를 이용하시는데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작업대 안쪽으로 휠체어가 잘 들어가지 않아 발은 패드에서 내리고 등은 굽힌 자세로 그림을 그리십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대형 이젤에 따로 캔버스를 올려드려야겠습니다. 그림은 잘 그리시네요. 신디가 잠시 수업에 왔다가 마를론의 그림을 보더니 눈썹을 위로 올리고 엄지를 세웁니다.
수업을 마치고 다음 시간에 또 보자며 인사를 나누는데 다운증후군이 있는 한 친구(파울라)가 갑자기 작업대에 엎드리더니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가만히 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답이 없습니다. 일단 작업대를 정리하고 재료들을 챙깁니다. 5분쯤 지나 안 되겠다 싶어 신디를 부르러 갑니다. 신디와 장애재활코디네이터 리나까지 왔습니다.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우는데 웃으며 같이 수업한 저로서는 당황스럽네요.
리나가 보호자분께 연락해서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파울라가 미술 수업을 너무 좋아하는데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워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혹시 오늘 만든 꽃을 두고 가라해서 그런가 싶어 꽃을 손에 쥐어드리니 배시시 웃으며 갑니다. 아, 꽃 때문이었습니다. 10년 넘게 재활코디네이터로 일한 신디와 리나는 역시 대응이 노련하네요. 저만 우왕좌왕, 의사표현이나 감정표현이 서툰 장애인 분들을 대하는게 아직은 쉽지 않습니다.
꾸덕한 크림이 들어간 크레페(Crepe)가 갑자기 먹고 싶어 점심은 외식을 합니다. 기관(DIVRI)에서 10분 거리에 보고타(Bogotá, Colombia)에서 유명한 빵집 체인 오르니또스(Hornitos)가 있는데 2층에 식당을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네요. 치킨버섯 크림 크레페와 바질 레모네이드(Limonada de Albahaca)를 주문합니다. 메뉴 선택이 탁월했습니다. 신나게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주스 맛있냐고 묻습니다. 제가 너무 맛있게(정신없이 ㅋ) 먹었나봅니다. '최고!(¡Súper!)'라고 하니 그분도 따라 시키시네요. 허브는 음식에 들어가서 맛없는 게 별로 없습니다. 미식가가 아닌 저에겐 더 그렇습니다.
(신명기25: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You must have accurate and honest weights and measures, so that you may live long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
2023.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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