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국인 이야기ㅣ이어령, 출생의 비밀, 샘리처드 교수 K-Pop, K-Drama (파람북)
해외에 나와 살다 보면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커집니다. 이곳에서 나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내겐 엄연히 내 나라가 있고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가 있다는 자존감과 소수자인 외국인이라는 열등감이 섞인 마음일 겁니다. <한국인 이야기>라는 책의 제목 옆에 '너 어디에서 왔니?'라는 부제가 요즘 제가 많이 듣는 말이라 읽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에 있을 땐 한국을 잘 몰라도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는데 외국에 있으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울 때도 있고 그래서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보화 시대 다음에는 생명화 시대, 생명자본주의 시대가 온다고 말씀하는 이어령 선생은 그 생명 자본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민족이 한국인이라고 말합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University of Pennsylvania) 샘 리처드(Sam Richards, 1960) 사회학 교수가 '글로벌 위기의 해답은 한국에 있다, 한류에 한계는 없다, 한국 자체가 매력, 한국의 고유성을 유지해야 한다'라는 맥락의 강연을 하는 것과도 흐름이 닿아있는 듯합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잠재력, 출생의 비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책의 서문에서 이어령 선생은 '랑' 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특별한 감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고개를 넘다가... 왜 모두가 꼬부랑일까요... '랑' 자의 부드러운 소리를 타고 꼬부랑 할머니, 꼬부랑 고갯길이 보입니다. 아리랑 고개도 틀림없이 그런 고개였을 겁니다. 이응으로 끝나는 콧소리 아름다운 세 음절의 낱말.
구슬프면서도 은근한 흥이 있는 '랑' 자로 끝나는 노래와 이야기를 타고 한국인의 온갖 이야기가 들려온다고 말합니다. 어딘가 수긍이 갑니다. 외국인 친구들이 가장 많이 아는 한국어가 '사랑'입니다. 노래 가사에도 드라마에서도 그 단어가 많이 나온다며 의미를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에도 '랑' 자가 있어 한국인들이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는 걸까요. 동글동글한 걸 좋아하는 민족, 언어도 동글동글, 재미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과 한국어는 직선보다 곡선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영어나 스페인어를 배우다 보면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의사전달에는 명확하고 직선적이라 편하긴 하지만 어딘가 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드럽고 완곡한 표현이 많은 우리말을 영어나 스페인어로 옮길 때 적당한 표현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곡선의 민족, 완곡한 우리말에는 정서와 문화를 실어 나르는 기능이 특히 강합니다.
이어령 선생의 책은 독창적이고 특이합니다. 처음에는 응..? 갸우뚱하게 되는데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 100년 가까운 생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다가신 분이 한국인의 DNA에 대해, 그것도 언어와 문화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록을 남겨주신 이어령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기록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가 새삼 깨닫습니다.
2023.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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