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작별ㅣ이어령, 유고집, 생명자본주의 (성안당)
10년 전쯤 이민아(1959-2012)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이어령(1933-2022) 선생을 알게 됐습니다. 이성주의자에 무신론자인 아버지를 신앙으로 이끈 이민아 목사님의 극적인 삶은 제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어령 선생께서 2015년에 출간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라는 책에서 딸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버지들은 딸을 구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딸이 아버지를 구하는 일이 더 많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어령 선생은 2022년 2월, 89세의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시는 날까지 글을 쓰며 후대를 위한 메시지를 남기셨고 암투병 중에도 적잖은 대내외 일정을 소화합니다.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52세에 말기암으로 사망한 이민아 목사님과 역시 항암치료와 모든 치료제를 거부하고 마지막을 맞이하신 이어령 선생은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가 꼭 닮았습니다.
이 책은 역사, 미래, 철학, 산업, 생명과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학자로 살아오신 이어령 선생께서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이니 한 문장 한 문장, 단어 하나에도 통찰이 집약돼 있습니다. 아끼는 제자에게 말씀하듯 다정하지만 힘 있는 문체는 읽는 내내 '허투루 읽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명자본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습니다.
생명자본은 먹거리가 바로 생명과 직결되는 농업 분야에서 일어날 거예요... 생명자본주의는 농업에서부터, 먹거리에서부터 시작될 겁니다. (중략) 그런데 교육 기관은 지금 제일 뒤처져 있는 곳 중 하나예요. 의무교육이다 뭐다 국가가 만들어준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하니까 교육이 세뇌가 되어버리고 다 낡은 틀이다 보니까 천재들을 바보 만드는 게 학교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교육 혁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그중에서도 생명자본 교육이 중요합니다.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교사가 하는 획일적인 교육, 또 그 교육을 받고 획일화되는 학생들. 이어령 선생의 표현처럼 교육에는 '혁명'과도 같은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교육제도를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으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일 할 능력과 자격이 있는 누군가가 그 일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도 유고집으로 분류하고, 이어령 선생께서도 유언과도 같은 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책의 서문과 본문에 나온 글을 발췌해 봅니다.
이를테면 미래를 향한 작은 나의 유언과도 같은 것이죠.
...
잘 있으세요. 여러분 잘 있어요.
마지막 인사를 읽는데 코 끝이 찡합니다. 제 인생도 마지막 날 세상을 향해 '잘 있어요.'라고 작별인사할 수 있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2023.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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