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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투명사회ㅣ한병철 Byung-Chul Han, 재독 철학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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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투명사회ㅣ한병철 Byung-Chul Han, 재독 철학자 (문학과지성사)


재독 철학자 한병철(Byung-Chul Han, 1959)의 책 <투명사회>는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됐습니다. 제목에서부터 현대인들을 일깨우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묻어납니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 1942)의 문장이 앉혀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아주 단순한 논리로 이 문장은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은 유명인의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두에게 공개된 삶, 공공연하게 대중에 공유되는 삶,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힙니다. 이 책이 이런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한 문장으로도 책 <투명사회>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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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전체 9개의 소제목으로 나뉩니다.

 

긍정사회 / 전시사회 / 명백사회 / 포르노사회 / 가속사회 / 친밀사회 / 정보사회 / 폭로사회 / 통제사회

 

어떤 면에서는 투명성이 신뢰성과 유사한 개념으로 여겨집니다. 일례로 정부의 경우 투명한 정부를 내세우며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국민에 공개합니다. 마치 그것이 신뢰받는 국가, 정보의 자유, 사회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책에서 한병철 철학자는 투명사회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라며 투명성을 긍정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사회에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모두가 모두를 가시성과 통제구역으로 몰아넣는다. 사적인 영역도 여기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이런 전면적 감시 속에서 "투명한 사회"는 비인간적인 통제사회로 전락한다. 모두가 모두를 통제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분명 타자의 시선을 받지 않은 채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 영혼의 내부를 훤히 비춘다면 영혼을 불타버릴 것이며 특별한 종류의 소진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오직 기계만이 투명하다. 즉흥성과 우발성, 자유처럼 삶을 이루는 본질적 요소들은 투명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신뢰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 특히 공감하는데, 저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신뢰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모든 무지가 제거된 투명한 상태에서 신뢰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뢰는 오직 지(知)와 무지의 중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투명성을 강조하는 사회의 위험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경고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투명성을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 자체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조작 가능하고 신속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투명성은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한다. 투명사회는 곧 획일적 사회가 되는데 이 점에 투명사회의 전체주의적 특성이 있다. 


긍정사회의 속도감 덕분에 긍정성, 투명성이라는 가치가 현대사회에서 강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병철 철학자 역시 헤겔의 말을 언급하며 부정성의 가치를 새롭게 보고 있습니다. 빠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부정적인 견해는 무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헤겔에 따르면 정신이 '힘'이 되는 것은 오직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곁에 머무를 때 뿐이다. 반면 오직 긍정적인 것 사이에서만 뛰어다니는 자는 정신이 없다. 정신은 느리다. 투명성의 시스템은 스스로를 가속화하기 위해 모든 부정성을 폐기 처분한다. 


책의 역자는 해제에서 한병철 철학자를 '부정성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부정성은 이 책의 제목과 반대되는 불투명성과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효율성과 같은 속도감 있는 것에 가치를 두는 성과사회를 한 번쯤 회의해 볼 것을 제안하는 저자는 부정성의 축소와 소멸을 우려합니다. 부정성의 핵심 개념에 '타자',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나의 의지와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 나에게 거역하는 것,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혐오스러운 것.. 이 모든 것이 부정성의 범주에 속한다. 


투명한 사회, 긍정의 가치를 높이 사는 현대사회에 불투명한 부정성의 가치를 새롭게 제시한 책입니다. 한병철 철학자는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 여러 저서를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질적인 것을 제거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에 부정성이라는 가치로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2023.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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