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현지인 친구 어머니 빈소·상가 조문, 콜롬비아 Colombia 장례문화 (ft.보고타장례식장)
저녁 먹는 중에 최근 연락이 뜸하던 현지인 친구에게 와츠앱 메시지가 옵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미술수업 수강생인데 올해 들어 몸이 계속 안 좋으셔서 수업에 못 오고 계신 상황이라 순간 안 좋은 느낌이 듭니다. 어제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사고나 죽음이 그렇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일단 먹던 음식을 옆으로 밀어 두고 번역기 앱을 켭니다. 이곳 장례 문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니 외국인인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표현을 찾아 정리한 다음 답장을 보냅니다. 조문할 수 있는지도 물어봅니다.
친구가 이미지 하나를 보내줍니다. 조문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 장례식 일정, 출상 일시와 공원묘지에 대한 정보가 다 들어있습니다. 오늘은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12시간 조문을 할 수 있고, 내일은 오전 8시부터 조문이 가능하고 오후에는 장례 예식 후 공원묘지로 가신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미 저녁 7시가 다 되어 내일 아침 일찍 조문 갔다가 출근하기로 합니다. 친구에게는 내일 아침에 가겠다는 메시지만 간단히 보냅니다.
기관(DIVRI) 코워커에게 와츠앱으로 콜롬비아 장례 예절은 어떤지에 대해 물어봅니다. 우리나라처럼 조문금을 준비하는 문화는 없고 가서 인사만 하고 와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뭔가 선물할 게 있는지 물어보니 작은 화환을 보내거나 꽃을 사가기도 한다며 구글링 한 이미지를 보내줍니다. 우리나라 화환처럼 크지 않고 40~50cm 크기의 꽃꽂이인데 주문해서 보내면 빈소에 놓는다고 합니다. 머릿속으로 전화주문..? 인터넷결제..? 가능한가..? 어떡하지 고민하는데 코워커가 장례식장 근처에 꽃집이 있을 테니 아침에 들러 사가라고 합니다.
장례식장은 챠피네로(Chapinero)에 있는 Funeraria Gratitud 입니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인데 출근시각이라 버스가 모두 만원입니다. 디디앱(DIDI)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가는 동안 가방에 챙겨 온 구두로 신발을 갈아 신습니다. 8시쯤 장례식장에 도착합니다. 보통 기관에 9시까지 출근하는데 코워커에게 오늘은 10시 수업시간에 맞춰 가겠다고 이야기해 뒀습니다. 근처를 둘러보니 꽃집이 안 보입니다. 장례식장 입구 직원에게 꽃집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여기서도 꽃을 살 수 있다며 안쪽 사무실로 안내해 줍니다.
슈트를 근사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모니터로 근사한 화환을 보여줍니다. 금액을 보니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380,000pesos)이 넘는 고가입니다. 지갑을 보니 카드는 없고 300,000pesos 있네요.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꽃 말고 다른 게 있는지 물어봅니다. 작은 인형과 책을 보여줍니다.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하는 형태로 판매하는 듯합니다. 친구 어머님 이름으로 구입합니다. 꽃을 샀으면 더 좋았겠지만 친구와 친구 어머님이 제 마음을 알아줄 거라 믿으며 50,000pesos(15천원)에 인형을 구입하고 옆에 제 이름을 적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갑니다.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인 듯 깨끗하고 내부도 고급스럽습니다. 빈소 앞에 친구의 둘째 동생이 방명록을 보며 울고 있습니다. 제 발소리에 고개를 들더니 제 이름을 대며 맞냐고 묻고는 친구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와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저도 방명록에 한글과 스페인어를 섞은 글을 남기고 빈소로 들어갑니다. 장례식장 방명록 앞에 번역기 돌리고 서 있기 그래서 어려운 부분은 한글로 썼는데 친구 어머님은 이제 한글도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빈소 가운데 은색 십자가가 있고 그 아래 친구 어머님이 누워계십니다. 관 위에 놓인 사진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터지네요. 지난해 기관에서 같이 미술수업도 하고 연말에는 집에 초대받아 같이 식사도 했는데.. 이렇게 일찍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될 줄.. 1층에서 구입한 인형을 화환 옆에 올려두고 기도합니다. 천국에서는 휠체어 도움 없이 자유롭게 어디든 다니시며 주님 안에서 기쁘고 평안하시길.. 친구의 동생이 느닷없는 인형의 등장에 옆에 문구를 읽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관 위에 인형을 올려둡니다. 커다란 눈을 가진 인형이 천국길의 친절한 동행이 되어주길, 그리고 긴 팔로 친구를 위로해 주길 바랍니다.
친구 동생이 본인은 나쁜 딸이었다며 펑펑 웁니다. 공부하라는 엄마 말을 안 듣고 놀러 다니고 대학도 안 갔다며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아픈 엄마도 돌본 좋은 딸이라고 합니다. 친구는 해외로 다니며 사는 걸 좋아하는데 엄마 돌보느라 그동안 콜롬비아에 있었었다며 이제 다시 외국에 나갈 테니 제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라고 부탁합니다. 늘 서로를 걱정하는 게 가족인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제게 단짝인 엄마를 잃은 언니를 부탁하는 동생의 마음이 느껴져 또 눈물이 나네요.
9시 조금 넘어 이것저것 행정처리를 하고 친구가 왔습니다. 그동안 빈소는 조문객으로 꽉 차서 저는 입구에 나가 서있습니다. 눈이 퉁퉁 부은 친구가 저를 보더니 와줘서 고맙다고 꼭 안아줍니다. 번역기를 돌려 친구에게 전할 문장 하나를 찾아뒀었는데 그 말도 안 나오네요. 그냥 같이 웁니다. 조문객이 많아 밖에 조금 더 서있다가 10시 수업을 가야 해서 9시 30분쯤 친구에게 인사하고 빈소를 나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는데 창 밖 전깃줄에 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앉아있습니다. 예뻐서 줌을 당겨 사진을 찍는데 또 한 마리가 조금 거리를 두고 전깃줄에 앉습니다. 꼬리를 흔들고 서로 깃털도 골라주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전깃줄이 여러 개인데 하필 같은 줄에 조르르 앉았네요.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제 마음도 이렇게 가라앉는데 친구는 어떨까요.. 주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요한일서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d and knows God.
2023.2.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