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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ㅣ황수영, 독립출판 (이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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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ㅣ황수영, 독립출판 (이불섬)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작가 황수영의 산문집입니다. <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라는 제목인데 잔잔한 일상과 자신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꺼내놓는 작가의 예민함이 책 모든 페이지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자극적인 표지와 제목, 위트 인양 이말 저말 여기저기 뿌려놓은 책들은 읽고 나면 마음도 여기저기 흩어지는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단정한 글을 만났습니다. 

 

 

황수영 작가의 문체는 겸손합니다. 마치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어린 청년이 나이 지긋한 인생 선배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듯한 신선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요.. 이렇게 아픈 것이 삶인가요.." 저도 꽤 오래 이런 이야기를 선배들 앞에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러기엔 부끄러워 혼자 속으로 되뇌기만 하는, 영원한 질문입니다. 

 

 

"하루 다섯 시간가량. 소위 말하듯, 먹고살기 위해 최소한이라 생각하는 노동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이 나를 잡아두는 시간은 그 이상입니다. 나는 얼마큼의 시간을 오롯이 나로 살 수 있는지,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루 다섯 시간, 그 정도는 내어줘도 괜찮은 걸까요." (p24)

 

밥벌이, 생계. 해야지요. 그것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라도 내놓아야 내가 나의 마음의 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지 못하는 미안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 역시 이런 생각에 내내 괴롭습니다. 제 마음을 마치 그대로 옮겨둔 것 같은 이 글은 <사랑,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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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너무 빨라서 마치 종이 모서리에 베인 때처럼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게 상처를 냅니다. 그래서 글이 좋아요. 몇 번이고 고쳐 쓰곤 합니다. 나도 모르게 담은 말의 날은 걷어내고, 조금 모자란 말은 채우고, 다 담지 못한 마음에 글자를 하나 바꾸어보기도 하며 더 마침맞은 말로 만듭니다." (p48)

 

<말의 날>이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말보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황수영 작가의 이 글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말실수'라는 표현은 있어도 '글실수'라는 표현은 없는 것을 보면 말을 다듬는 것보다 글을 다듬는 것이 훨씬 쉽다는 생각도 합니다. 실수 없이 말을 하기 위해 오래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충분히 맞춰본 후에 천천히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적절한 타이밍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채가버린 후입니다. 그러다 보면 말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게 되지요.

 

 

어디서 본 표현인데 '입이 말썽인 상황은 왕왕 있지만 귀가 말썽인 경우는 없다'라고. 딱 맞는 것 같습니다. 황수영 작가와 정서가 비슷한 사람들이 이 글을 만나지 못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나처럼 바보같고 나처럼 어설픈 사람이 또 어디에선가 살고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니까요. 이 책을 세상에 내보내 준 황수영 작가께 감사하고, 제게 이 글을 소개해 준 친구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2021.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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