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단테의 신곡ㅣ단테, 죽음 천국 지옥 연옥, 구스타브도레 삽화 (황금부엉이)
단테의 <신곡>입니다. 모르는 이가 없을 법한 책인데요. 저는 구스타브 도레의 그림이 삽화로 들어있는 황금부엉이 출판사의 책을 골랐습니다. 이 책은 '단테 작품의 본질적인 뜻과 생명력을 보다 쉽고 간결하게 전달하기 위해 중심이 되는 부분을 뽑아 의역한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원제는 <희극>이었으나 후에 '신성한 Divina'이라는 형용사가 덧붙여져 <신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단테가 1308년경에 쓰기 시작하여 죽기 바로 전인 1321년에 끝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시각에서 인간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고뇌와 여정을 그린 역작으로 <신곡>은 총 14,233행의 서사시입니다. 지옥, 연옥, 천국 총 3편으로 각 편은 33장, 각 연은 3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단테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도움을 받아 지옥, 연옥, 천국 등 영혼세계를 두루 여행한 여행기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지옥편>
문득 눈을 떠보니 반평생이 흘렀네
사방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두운 숲
길다운 길 하나 없는 절망의 심연
아, 나는 거기 있었네
"인간이란 이렇게 불편한 존재로구나.
무슨 일만 있으면 겁을 먹고, 그림자에도 깜짝 놀라는 나약한 짐승과도 같구나.
고귀한 명예와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겁이 나서 꼬리를 말고 도망치고 싶어 하다니
쓸데없는 걱정은 그대의 앞길을 가로막을 따름이라네"
(p.22)
첫 문단은 단테의 독백, 두번째 인용문은 단테를 만난 베르길리우스의 말입니다. 인간을 '불편한 존재'라고 묘사한 부분이 지금 제게 딱 와닿습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이란 다섯개의 감각(5감)만으로만 인지하는 불편한 존재이며, 그래서 연약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시간, 공간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 등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 부분을 언급하는 문장이 '천국편'에 나옵니다.
<천국편>
"세속에서 통용되는 오감이나 이성의 날개로 날아가는 하늘은 너무도 좁고 낮다는 말을 내가 하지 않았던가요?" 하고 베아트리체는 나를 나무랐다. 그러나 별들은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위와 아래, 또는 가고 싶고 가고 싶지 않고, 그런 것은 없지요.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전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빛나고 있을 따름입니다." ... (중략) ... 그러므로, 내가 거기서 이해하고 깨달은 과정을 지금 여기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p.226)
이런 심오한 글을 만날 수 있고, 결코 명료하지 않지만 그 의미를 더듬을 수 있을 만큼 제 인식의 수준이 10대 시절의 그것 보다 조금은 올라왔다는 것이 기쁩니다. '너무도 좁고 낮다', '어떻게 존재하느냐'. 단테 역시 '거기서'와 '여기서'라는 애매한 단어를 동원해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어색하지만)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알았다. 모든 형태는 순간적이며 헛된 것임을. 주가 창조하신 것은 원소라 부를 그런 생명이며 그것이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힘, 원동력이 되어 형태를 만들어 낸다. 꽃은 시들어도 그 존재가 사라지진 않는다. 씨로 땅에 떨어져 빛을 받아 꽃을 피운다. 죽음도 삶도, 빛이 사물을 거울에 비추는 것처럼 하나의 반사에 지나지 않으며 실체가 없는 것임을....
(p.230)
이 글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을 건너 그곳으로 가면 그땐 이곳에서의 모든 일이 전모를 드러낼까요. '헛된 것'임에도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야하는 우리에게 고통, 슬픔, 불안 같은 또렷한 감정들 또한 어찌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2021.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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