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스페인어 과외 선생님, 코이카 사무소 보험청구 서류 제출 (ft.콜롬비아보고타)
지난달에 치과 진료받은 서류(진단서, 진료내역서, 처방전, 결제영수증)를 챙겨 코이카사무소로 갑니다. 봉사단원이 질병, 사고, 재해로 상해를 입은 경우 보험으로 커버할 수 있는데 치과 진료도 급여항목에 대해서는 보험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Quinta Paredes)이랑 코이카사무소(Usaquén)가 거리가 좀 있어서 갈 땐 여러 일정을 모아 한번에 갑니다. 오늘은 현지적응 훈련 기간 스페인어 선생님과 점심 약속이 있어 겸사겸사 들릅니다.
버스를 타러 갔는데 뜨랜스밀레니오 역 개표구를 통과하자마자 제가 탈 버스(M86)가 승강장으로 들어옵니다. 뛸까..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차를 타기로 하고 설렁설렁 걸어가는데 곧바로 텅텅 빈 M86이 또 들어옵니다. 앞에 간 버스는 거의 만원이었는데 오늘 운이 좋네요. 가는 동안 내내 앞차 꽁무니를 따라가니 도착할 때까지 여유롭게 갑니다. 버스 내려서 보니 앞에 M86버스 5대가 정차 중이네요. 여기가 종점인가 봅니다.
코이카사무소가 있는 삼성빌딩(Torre Samsung) 인근은 올 때마다 한국냄새가 물씬 납니다. 봉사단원으로 오기 전 이런 건물에서 10년 넘게 일할 땐 갑갑하고 스트레스받는 일만 있어 건물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는데 한발 떨어져서 보니 다 좋아 보입니다.
사무소에 올라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 스페인어 선생님이 수업 마칠 때까지 1시간 정도 시간이 빕니다. 우리 기수(150기)는 스페인어 수업을 건너편 공유오피스 위워크(WeWork)에서 했는데 151기부터는 코이카 사무소 내에 있는 강의실에서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전임 미술교육 단원이었던 코디님과 인생이야기(!)를 나눕니다. 6개월 계약기간을 마치고 내일 한국 가는 직원분도 계시고, 현지적응훈련 기간에 버디버디 프로그램으로 만났던 현지인 중에 직원으로 채용된 분도 계셔서 이리저리 인사하고 나니 12시가 됐습니다.
점심은 건너편 오리엔탈 식당(WOK)에서 먹습니다. 저는 오랜만이고 마리샘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림 가르쳐준다고 하고 아직 실행을 못한 것에 미안함을 담아 점심은 제가 대접합니다. 10월에 만났으니 거의 3개월 만에 보는데 어색하지 않고 편합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마리샘은 철학석사라 생각하는 코드가 비슷합니다. 제게 스페인어를 가르쳐준 마리샘이 그동안 제 스페인어가 정말 좋아졌다고 여러 번 칭찬해주니 뿌듯합니다.
후식은 알피나(Alpina)에서 커피랑 틸지트 치즈(Queso Tilsit), 아레끼뻬(Arequipe)로 합니다. 아레끼뻬는 둘세데레체(Dulce de Leche)라고도 불리는데 콜롬비아에서 흔히 먹는 디저트 소스입니다. 캐러멜과 비슷한데 과일, 쿠키, 치즈,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습니다. 치즈랑은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네요. 단거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너무 맛있다고 걱정했더니 마리샘이 'Dulce es saludable! (달콤한 건 건강한 거야)'라며 격려해 줍니다. 집 가서 먹으라고 한 세트 더 포장까지 해줍니다. 저도 마리샘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서로 고민도 나누고 속 깊은 이야기도 꺼냅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주제의 범위가 넓어지는 멋진 일입니다.
2월부터 마리샘과 스페인어 개인 과외를 하기로 했습니다. 바쁜 마리샘이 시간이 있을까 슬쩍 말을 꺼내봤는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가능하다고 해서 부탁했습니다. 미술수업이나 미술치료를 하려면 언어가 너무 중요한데 답답한 마음이 실력을 키울 거라 생각합니다. 2시부터 오후 수업인데 이야기하다 늦어 마리샘은 헐레벌떡 올라가고 저는 집 가는 버스를 타러 갑니다. 마리샘은 가톨릭이 국교인 콜롬비아에서 드문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은 모두 수다쟁이라는 걸 오늘도 경험합니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땐 평일 낮에 길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제가 오늘 그러고 있네요. 부러워하던 상황도 결국은 누군가의 일상일 뿐입니다. 권태와 욕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사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버스에서 내리니 몬쎄라떼(Monserrate) 쪽에서 짙은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오늘도 비를 잘 피해서 다녀왔습니다. 마리샘이 사준 치즈(Queso Tilsit)와 아레끼뻬(Arequipe)는 냉장고에 보관할 틈도 없이 씻고 나와서 바로 먹습니다. 달콤하고 고소한 게 정신건강에 좋은 맛입니다.
(누가복음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을 것이요 두르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the one who seeks finds; and to the one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2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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