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책] 거지 소녀ㅣ앨리스 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동네)

728x90
반응형


[책] 거지 소녀ㅣ앨리스 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동네)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Who do you think You are?)>

 

이 책이 1978년 캐나다에서 처음 출간될 때 원제이며, 책에 수록된 10개의 단편 중 마지막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상대의 오만함을 지적하고 수치스럽게 하려는 의도가 담긴 질문입니다. 이 작품은 가난한 시골에서 자란 '똑똑한 여성' 로즈가 그 굴레를 벗어나려 애쓰며 살아가는 모습을 극도로 차분하고 초연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The King and the&nbsp; Beggar maid(1884)_Edward Burne Jones

 

<거지 소녀>라는 제목은 에드워드 번 존스의 그림, <코페투아왕과 거지소녀(The King and the  Beggar maid(1884), Edward Burne Jones>에서 차용했습니다. 예쁜 거지 소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코페투아왕이 나라 대신 사랑을 택하고 거지 소녀와 결혼한다는 동화적 배경이 있는 그림입니다.

 

반응형

 

주인공 로즈는 장학금을 받고 지방대에 진학한 가난한 시골 출신 수재 여성입니다. 팍팍한 삶을 버리고 부유한 재벌가 자제인 패트릭과의 이른 결혼으로 도피합니다. 그러나 갈등으로 점철된 결혼생활과 상류층의 폐쇄적 삶에 환멸을 느껴 10년 만에 이혼하고 불안정하지만 독립된 삶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갑니다.  

 

(로즈) "우리는 너무 다른 세계에서 자랐어. 우리 가족은 가난해. 자기는 내가 살던 곳을 보면 돼지우리 같다고 생각할 거야." 상대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는 척하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이제 그녀였다. 

 

(패트릭) "하지만 나는 좋아.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로즈는 그 그림을 보았다. 그녀는 유순하고 육감적인 거지 소녀와 그 소녀의 수줍은 흰 발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녀의 소심한 굴복, 그 무력함과 황송함. 패트릭은 로즈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걸까?

 

<거지 소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앨리스 먼로(Alice Ann Munro, 1931) 특유의 담담한 화법이 주인공 로즈가 처한 현실과 독자들을 더 가깝게 합니다. 딸과 교감을 나누지만 혹독한 매질도 서슴지 않는 과묵한 아버지, 딸의 허영을 억누르려는 어머니, 거기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똑똑한 여자 로즈. 10대 시절 저녁마다 책을 한아름 집으로 가져와 읽는 로즈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입니다. 

 

"조심해라. 너무 똑똑해지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그가 딸에 대해 통제하기 힘든 짜증과 우려뿐만 아니라 자부심 또한 느끼고 있다는 것을. 

 

 

고등학교 때 그녀의 영어 교사 미스 해티가 시를 베껴 적지 않고 암송하는 그녀를 지적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시를 잘 외울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선 안 돼.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미스 해티는 여기에서 가르치고자 한 교훈을 그 어떤 시보다도 중시했고 로즈가 그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미스 해티 외에도 꽤 많은 것 같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똑똑한 여자의 삶은 심히 분열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자아실현이라는 것이 여성에게도 강조되고 교육되던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책의 번역자는 후기에서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규범이 굳건하고 사회의 인식이 변하지 않을 때 개인의 각성은 차라리 버거운 짐이었을 수도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앞선 각성을 통해 부조리한 세상에 변화의 계기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삶은 무수한 고난과 번뇌로 불행할지라도 세상은 그 덕분에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현대 단편소설의 대가로 손꼽히는 앨리스 먼로는 2012년 마지막 단편집 <디어 라이프(Dear Life)> 발표 후 문단에서 은퇴하고 이듬해 2013년 노벨문학상을 받습니다. 마지막 작품 제목처럼 작가는 모든 작품에 삶에 대한 섬세하고 내밀한 시선을 담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어렵고 치열한 과제라는 것을 그의 작품을 통해 배웁니다. 


2023.1.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