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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ㅣ프랑수아즈 사강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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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ㅣ프랑수아즈 사강 (범우사)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서 욕조의 물을 만져 보려고 몸을 숙였다. 그런데 이 동작이 그녀에게 갑자기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거의 15년 전의 일이었다.

 

개연성이 크지 않은 상황, 예컨대 어떤 냄새나 어떤 동작 또는 일정한 각도로 살짝 열린 차문 틈새 같은 것들이 불현듯 특정 시기를 떠오르게 하는 때가 있습니다. 삶은 여행처럼 늘 연속선 상에서 흘러가는 것이지만 그럴 땐 시간이라는 개념이 별 소용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요즘은 공기나 바람에서 느껴지는 촉감이 제게 그런 역할을 하고, 조금 더 어릴 땐 후각이 그랬습니다. 책의 주인공 폴르도 그렇게 15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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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에는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대학을 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로맨스 소설에는 거의, 전혀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시시하기도 했고 빛나는 청춘의 시기에 늘 연애를 하고 있어서 로맨스 소설을 통한 대리만족이 필요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는 생애 봄 같이 싱그러운 시기를 이미 지나 온 지금의 제게 꽤 설렘을 주는 책입니다.

 

연인이 있는 연상녀와 그녀를 사랑하는 연하남, 등장인물의 설정부터 완벽합니다. 폴르에게 남긴 시몽의 메모인데, 폴르에게 감정이입하는데 이 세 문장이면 충분할 지경입니다.   

 

"여섯 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음악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시몽이 쓴 것이었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쪽지를 받은 폴르가 시몽에게 음악회에 가겠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는 교외로 나가고 없습니다. 음악회에서 시몽을 만난 폴르가 시몽에게 교외는 어땠는지 묻고 시몽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내가 외출한 것은, 당신이 그 반대로 전화를 할까 아니면 전혀 전화를 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랬던 거예요."

 

폴르와 그보다 열네살 어린 시몽 사이의 극도로 조심스럽고 모호한 사랑의 감정에 몰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얼마나 난해한지 이런 소설이 아니라면 이 같은 감정이 들때 '모르겠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텐데 이처럼 세밀한 문체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게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나는 젊고 재치가 넘치는 변호사, 수줍어하는 애인, 응석받이 어린애, 그리고 하나님만이 아는 그 무엇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알고 난 뒤부터는 내 모든 역할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당신은 생각지 않습니까?".. "당신은 로제를 사랑하시지만 외롭습니다." 시몽이 말했다. 

 

삶의 시간이 쌓일수록 감정의 덧없음,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의 허무함을 깨닫게 됩니다. 39세의 폴르 역시 같은 이유로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때때로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연인 로제와의 관계를 이어갑니다. 시몽의 헌신적인 사랑도 끝이 예견되니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로제가 어떤 사람이건 연인이 있는 폴르의 권태로운 일상에 선물같이 주어진 사랑의 감정 역시 폴르와 시몽 입장에서만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겠지요.


어떤 글이나 그림을 좋아하면 그 작가의 삶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 작가의 삶을 작품과 연결시키는 것이 작품 이해나 작품 자체를 감상하는 데는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작품에만 오롯이 집중해 읽었습니다. 다 읽고나서는 결국 프랑수아즈 사강의 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돌아오게 되네요. 이토록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되어 행복합니다. 


2022.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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