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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ㅣ김영하, 장편소설 프랑수아즈사강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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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ㅣ김영하, 장편소설 프랑수아즈사강 (문학동네)


요즘 저는 작가 김영하 입문자로 작가님의 책, 인터뷰, 강의, 낭독회 등을 꼼꼼히 찾아보는 중입니다. 글이 좋은 건 당연하고 어딘지 무겁고 깊게 가라앉은 그분만의 분위기가 좋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작품을 통해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불쾌하게 하는 것도 소설가의 역할이라는 식의 답변을 하신걸 들었는데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가라면 글 작가, 그림 작가를 떠나 모두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책을 좋아하지만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불편한 감정을 끌어내는 소설이나 영화는 기피해왔는데 김영하 작가의 말을 충고 삼아 낯선 경험을 하기 위해 이 책을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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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 본명 Françoise Quoirez)의 발언을 차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대체 이렇게 근사한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찾아보게 됩니다. 좋은 책은 그 책을 통해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되고 그렇게 다른 작품과 작가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두 권,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도 조금 전 오디오북 서재에 담아놨습니다.  


주인공의 직업이 독특합니다. 사회적으로 허용된 표현으로는 고민상담사이지만 실제 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기 취향에 맞게 죽을 수 있도록 돕는 자살도우미 겸 작가로 설정돼 있습니다. 내용이 자극적이고 죽음에 대해 적나라하게 언급하고 있어 호불호가 극으로 갈리는 작품입니다. 이 책이 1996년 작품이고 김영하 작가가 이 소설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으니 당시 누군가는 신인작가에게 꽤 혹평을 했을 겁니다. 저 역시 작가보다 책을 먼저 만났다면 분명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겁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의 범위가 확장되니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의 폭도 넓어집니다. 이 책의 '한 문장'으로 저는 아래 두 구절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생각과 말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게 되면 그것만큼 기쁜 게 없습니다. 마치 성경을 읽다가 오직 나만을 위한 한 구절을 만나는 경험과 같습니다. 


<2장 유디트>

 

"사람은 딱 두 종류야.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과 죽일 수 없는 사람. 어느 쪽이 나쁘냐면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나빠..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해."

 

<5장 사르다나팔의 죽음>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으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이 부분을 인생에 대한 무상함 또는 죽음을 미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겐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가옵니다.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열한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묻어 있습니다.

 

한편으론 이 소설을 쓸 당시 김영하 작가가 20대 후반이었으니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염세주의적 철학사상에 관심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 역시 비슷한 시기에 실존주의 철학에 꽤 깊이 빠진 경험이 있어 무턱대고 넘겨짚어봅니다. 이 책 역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독자가 읽으면서 공상할 거리가 많다는 건 좋은 소설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합니다. 


2022.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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