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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슬픔이여 안녕 Bonjour tristesseㅣ프랑수아즈 사강, 김영하 작가 (아르떼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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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슬픔이여 안녕ㅣ프랑수아즈 사강, 김영하 작가 (아르떼arte)


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김영하 作, 1996)>를 통해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 1935-2004)을 알게 됐습니다. 구글링을 통해 본 화보에 담긴 작가의 외모나 분위기가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슬픔이여 안녕(1954)>은 프랑수아즈 사강이 19세에 출간한 데뷔작인데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놀라울 만큼 정교해서 마치 작품 속 인물에 동화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 글을 읽게 됩니다. 이 작품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은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하고 책은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판됩니다. 책을 출간한 지 40여 년 이 지나 그 시절을 돌아보며 쓴 에세이가 책 뒷부분에 수록돼있는데 당시 사강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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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나에 대해 쓴 글을 읽는 것인데, 그럴 때면 그것이 설혹 호의적이거나 합리적인 경우여도 흠칫하게 된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소위 출세한다는 것은 예민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공포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 의해 내가 평가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강은 본인의 책이 출간된다는 기쁨보다 앞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큼 글쓰기를 사랑했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이면서 화자인 17세의 세실이 아버지와 프랑스 남부의 한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설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애인이 휴가에 동행하고, 죽은 엄마의 친구인 지적이고 세련된 안이라는 여성이 이 휴가에 합류하며 이야기는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책의 도입부는 주인공 세실이 정의할 수 없는 낯선 감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던 감정이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슬픔아, 안녕?(Bonjour tristesse?)"

 

자연스럽게 이끌리듯 제 시선이 머문 프랑수아즈 사강의 문장을 소개해봅니다. 소설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감정의 결은 어떠한가를 알게 된다는 건 유익한 경험입니다.     

 

 

지중해 해안가, 어머니와 함께 옆 별장에 휴가를 보내러 온 법대생 시릴에 대한 묘사

 

라틴계 얼굴인 그는 살빛이 몹시 까무잡잡했으며 아주 활달하면서 뭔가 균형 잡힌, 상대를 편안히 감싸주는 듯한 면이 있었는데,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는 자기 자신에, 특히 자신의 젊음에 열중해 거기서 어떤 비극의 주제나 권태의 구실을 찾기 좋아하는 설익은 부류의 대학생들을 피하는 편이었다. 나는 젊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젊은이들보다는 아버지의 친구들, 그러니까 마흔 살 정도 되는 아저씨들이 더 좋았다. 나이 지긋한 남자들은 예의 바르고 애정 어린 태도로 나에게 말을 걸었고, 연인이자 아버지인 것처럼 부드럽게 대해주었다. 하지만 시릴은 내 마음에 들었다. 그는 큰 키에 때때로 무척 미남으로 보였다. 신뢰감을 주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나는 머리 나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둔하게 못생긴 얼굴을, 육체적으로 전혀 매력 없는 사람들을 대하면 일종의 거북함을 느끼거나 무관심했다. 상대의 호감을 사려는 시도조차 포기한 그들의 태도가 내게는 지나치게 나약하게 비쳤던 것이다.


안의 죽음 이후 시릴을 다시 본 세실의 마음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가 멋지고 매력적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나는 그가 내게 준 쾌락을 사랑했을 뿐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죽은 어머니의 친구이자 잠시 어릴 적 세실을 돌봐 준 안 라르셀에 대한 묘사

 

마흔두 살의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에 아주 매력적이고 세련되었고 도도하고 주변에 무관심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비난할 만한 점은 그 무관심뿐이었다. 안은 사랑스러운 동시에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녀에게서 의연한 의지력과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드는 진정한 차분함이 풍겨 나왔다. 


안의 죽음 직후 세실 자신에 대한 감정 묘사

 

그때 나는 안이 그런 죽음으로 자신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또 한 번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만약 아버지와 내가 자살을 한다면(우리에게 그럴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그 일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영원토록 불안해하고 편히 잠들 수 없도록 사정을 밝히는 유서를 남겨놓고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하지만 안은 자신의 죽음을 자살이 아니라 사고사로 여길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곳은 사고가 잦은 장소였고 안의 자동차는 커브 길에 약했다. 그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 마음이 약해졌을 때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선물이었다. 


2022.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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