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KOICA 해외봉사 일기ㅣ콜롬비아 미술교육
보고타 중앙공원묘지 Cementerio Central (ft.전직대통령·국가영웅)
다른 나라를 방문할 일이 있을 때 그 나라의 중앙묘지를 종종 찾습니다. 운이 좋으면 수백 년 전에 살다 간 저명한 학자나 위대한 작가들의 묘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고타에도 공원묘지가 4개 정도 있는데 그 가운데 산타페(Santafe) 지역에 있는 중앙공원묘지(Cementerio Central)가 가장 크고 전직 대통령이나 국가 영웅들의 묘가 있어 가보기로 합니다. 구글에 나와 있는 정보로는 연중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방문이 가능하다고 나옵니다. 집에서 걸어서 50분, 버스로 15분, 고민하다가 날이 더워 버스를 타러 갑니다.
정문으로 갑니다. 문이 잠겨있네요. 보안요원도 없어서 그 앞에서 꽃을 파는 상인분께 물어보니 옆문으로 가라고 합니다. 공원묘지 담장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길 양쪽에 비석과 조화를 파는 가게가 있는 도로가 나옵니다. 가게 앞에 작업대를 내놓고 대리석을 세공중이라 돌가루가 사방으로 날립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얼굴에 밀착되게 잘 고쳐씁니다. 가다보니 왼쪽에 검은색 철문이 잠긴 곳이 보입니다. 철문 안쪽에 앉아있는 보안요원에게 들어가 볼 수 있냐고 하니 문을 열어줍니다. 신분증이나 가방 확인 절차 없이 그냥 들어갑니다.
보고타 중앙공원묘지(Cementerio Central, Bogotá)는 가운데 큰 원형갤러리(galería circular) 형태의 묘지가 있고 서클 안쪽에는 전직 대통령 등 저명인사들의 묘지가 있고 서클 밖은 일반인들의 묘지가 있는 구조입니다. 옆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일반인의 묘지가 있는데 비석마다 사진이나 편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전에 스페인어 선생님(마리조)이 콜롬비아는 화장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 우선 관에 시신을 보관했다가 추후 화장을 해서 봉안한다는 말을 해준 기억이 납니다. 원형갤러리 형태의 묘지(아래 사진1)에는 관이 보관돼있고, 봉안함(사진2)은 따로 모아 보관하고 있습니다. 교회당 모양의 크고 작은 가족묘(사진3)도 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영면하시길..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원묘지를 돌아봅니다. 햇빛에 눈이 부신데도 선글라스를 벗어 들고 손을 모으고 걷는 제 모습을 문득 인지하고 태생이 유교걸인 한국인임을 깨닫습니다. 공원묘지 내에는 아이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은데 소음이 전혀 없습니다. 죽음 앞에 숙연해지는 건 인간의 본성인 듯합니다. 걷다 보니 원형갤러리(galería circular)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옵니다. 입구는 철문으로 잠겨있고 안쪽에 보안요원이 휴대폰 게임 중입니다.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니 문을 열어줍니다.
안쪽은 비석이나 대리석 묘의 형태도 더 화려하고 거대합니다. 18~19세기 콜롬비아의 정치인이나 학자, 사업가들의 유해가 묻힌 곳입니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위치에 예배당이 있는데 입구와 예배당 사이에 일직선으로 전직 콜롬비아 대통령들의 묘가 위치해있습니다. 후대를 위해 남겨둔 것인지 중간에 1~2곳 정도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예배당 앞에는 미사 시간을 기다리는 신자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계를 보니 11시 5분 전입니다. 잠시 안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기도드립니다. 11시 정각에 찬양을 맡은 사역자가 들어와 찬양을 시작하고 이어서 신부님이 들어오십니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날 때 저도 일어나서 옆 쪽으로 살짝 나옵니다. 가톨릭 미사는 일어났다 앉았다를 많이 해야 해서 뒷자리에 몰래 앉아 쉬기가 어렵습니다.
예배당 옆쪽으로 빠지면 저명한 학자, 사업가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어떤 여성분이 비석 위에 올라가 황금동상을 포옹하고 있습니다. 유족인지 모르겠지만 괜히 더 호기심이 생겨 구글링 해봅니다. 레오 지그프리드 코프(Leo Siegfried Kopp, 1858-1927)라는 사업가인데 콜롬비아 회사 바바리아(Bavaria S.A)를 설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수도관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묘 인근에, 그것도 황금 동상까지 제작한 걸 보면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분인 듯합니다.
보고타 중앙공원묘지(Cementerio Central, Bogotá)에는 경찰, 군인, 노동자를 위한 추모관이 별도로 마련돼있습니다. 보물찾기 하듯 공원묘지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2시간이 흘렀습니다. 살짝 숨이 차고 어지러운 느낌이 나서 그늘로 이동해서 심호흡을 합니다. 5분쯤 그늘에서 쉬고나니 진정이 되긴 하는데 밖에 나가 얼른 초콜릿 하나 사 먹어야겠습니다. 가방에 늘 사탕이나 초콜릿을 넣어 다니는데 오늘따라 안 가져왔네요.
출구로 나가면 바로 앞에 노점상이 있습니다. 초콜릿부터 하나 사서 바로 까먹고 돌아서는데 귀여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팔고 있습니다. 묘지에 장식하는 용도인데 집 문에 걸어두면 예쁠 것 같아 하나 삽니다. 사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데 넝마주이 아저씨가 "배고파(Tengo hambre)"하며 제게 말을 겁니다.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버럭 고함을 지르니 그냥 갑니다. 진짜 배고파 보이는데..라고 생각하는데 가게 주인아저씨가 제게 휴대폰 조심하라고 당부합니다. 아, 그렇네요. 이 지역은 보고타에서 위험하다고 소문난 산타페(Santafe barrio) 입니다. 주섬주섬 폰이랑 크리스마스 장식을 가방에 챙겨넣습니다.
(잠언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Wisdom is supreme, therefore get wisdom. Though it cost all you have, get understanding.
2022.12.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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