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KOICA 해외봉사 일기ㅣ콜롬비아 미술교육
미술실 정리 + 수업: 유화, 아크릴화, 한국화, 색연필 컬러링
미술 수업하는 곳에 이용자분들이 그린 그림을 붙여놓습니다. 잘 그렸거나 못 그렸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 자체로 자랑스러워하며 지인들을 데려와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자주 오시는 분들 그림이 아무래도 많이 전시되다 보니 소외되는 분들도 생기네요. 가끔 오시는 한분이 "내가 전에 그린 그림은 저기 없네요?"라고 물으시기도 해서 기준 없이 막 붙여놓은 그림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출근해서 그림을 정리합니다. 한 사람당 2점까지만 개수를 제한해서 고루고루 붙여놓습니다. 나머지 그림들은 따로 상자에 모아둡니다. 역시나 오늘도 한분(Gustavo)이 자기 그림 하나가 없다고 찾으시네요. 상황을 말씀드리고 다음에 제가 한국에 돌아갈 때 각자 그리신 그림은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작품들을 모아 작은 도록이라도 하나 만들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일단은 다 모아 두고 있습니다.
오늘 수업에는 평소 오시지 않던 분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한국화 수업을 하려고 계획했었는데 세 분은 좋다고 하시고 장애가 있는 몇몇 분들은 색연필 컬러링을 하겠다고 하셔서 도안을 나눠드립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 만드는 방법을 영상으로 보여드리니 멋지다며 신기해합니다. 기초적인 기법 몇 가지를 알려드렸는데 그림을 꽤 잘 그리는 한 분은 처음인데 바로 적응하십니다. 손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분께는 한지 색종이를 드리고 나무나 꽃을 색종이로 꾸며보시라고 합니다.
금요일 오전에만 오시는 분(Carmen)인데 작업 중이시던 아크릴화를 이어서 하십니다. 스케치도 없이 꽃잎을 슥슥슥 그리시는데 실력이 굉장합니다. 그림을 완성하시고는 선물이라며 저에게 주시네요. 우와, 냉큼 빈 공간에 붙여둡니다. 다른 이용자분의 유화 작품을 보고 모작(模作) 해보겠다고 하신 분(Juval)은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 드디어 그분 생에 첫 유화작품을 완성합니다. 다들 어찌나 근사한 그림을 그려내시는지 제가 늘 보고 배웁니다.
컬러링 도안을 하나씩 그리다 보니 이제 15개 정도 됩니다. 마르셀라(Marsela)에게 부탁해서 여러 장 복사를 하고 비닐 파일에 분류해둡니다.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장애가 있는 분들은 컬러링 작업을 선호하셔서 단순한 도안부터 조금 복잡한 것까지 조금씩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제게 만다라(mandala)를 도안을 요청하셨던 분(Sandra)이 오셔서 드렸더니 색 조합을 굉장히 잘하셨네요. 손으로 대충 그렸는데 제대로 몇 개 더 그려드려야겠습니다. 집에 갖고 가고 싶다고 하셔서 그러시라고 합니다.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 있는 분이 가끔 오셔서 재료를 다 망가뜨리고 가시는데 오늘 또 오셔서 살짝 경계했더니 다행히 차분하게 색연필로만 작업하고 가십니다. 본인도 결과물이 꽤 마음에 드시는지 색칠한 것을 들고 사진을 찍어달라 하시더니 갖고 가셨습니다. 약간의 치매 증세가 있는 분이 처음 오셨는데 색칠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동행한 자녀분이 미술수업 시간표를 꼼꼼히 체크하고 가시면서 자주 오겠다고 하시네요. 또 뵈어요!
미술 수업 출석률 100%인 우등생분(Luis)은 요즘 유화 작업에 푹 빠지셨습니다. 새로 구입한 캔버스가 있는데 우선은 연습 삼아 편하게 사용하시도록 색을 덮어 재활용하는 캔버스를 여러 개 드립니다. 그림이 어쩜 다 귀엽고 멋집니다. 편하게 사용할만한 저렴한 재료들만 구매하니 물감 상태도 좋지 않고, 붓의 질도 그리 좋지 않은데 이 정도 그리는 것을 보면 언젠가 제 그림 선생님께서 "질이 좋지 않은 재료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림실력이 빠르게 좋아진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DIVRI 이용자분들, 모두 응원합니다.
2022.11.
글약방her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