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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ㅣC.S.루이스, 기독교 변증론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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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ㅣC.S.루이스, 기독교 변증론 (홍성사)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C.S. 루이스의 책 <순전한 기독교>입니다.

 

C.S.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20세기 영국의 대표 문학자입니다. 청년시절까지 무신론자였으며 1929년, 30세 즈음에 회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뛰어난 변증론자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사탄(악마)'의 관점에서 기독교와 기독교인에 대해 쓴 <스크루 테이프의 편지>로 기독교계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C.S. 루이스의 대표적인 기독교 저작으로 <순전한 기독교>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종교라는 시각을 떠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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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머릿말에서 부터 C.S. 루이스의 기독교와 기독교인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3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C.S. 루이스는 태어나면서 기독교를 갖게 되는 모태신앙인들과 비교했을 때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어떤 종교인가 여부를 가리지 않고 많이 읽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방(교파)을 찾게 되었다면, 다른 방을 택한 사람들과 여전히 현관 마루(무교파)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해 주십시오. 만약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러분의 기도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또 만약 그들이 여러분의 원수라면, 여러분에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 집(기독교) 전체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규칙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p.21)

 

(종교를 초월해서)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이 잘 못하고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하고, 그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하니, 결국 어떠한 판단도 할 수 없는 우리는 자신과 온 인류를 위해 '단지 기도'할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1장. 옳고 그름, 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 인간본성의 법칙 / 몇 가지 반론 / 이 법칙의 실재성 / 이 법칙의 배후에 있는 것 / 우리의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 2장.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하나님'과 경쟁하는 개념들 / 하나님의 침공 / 충격적인 갈림길 / 완전한 참회 / 실제적인 결론
  • 3장. 그리스도인의 행동 도덕의 세 요소 / 기본 덕목 / 사회도덕 / 도덕과 정신분석 / 성도덕 / 그리스도인의 결혼 / 용서 / 가장 큰 죄 / 사랑 / 소망 / 믿음 
  • 4장. 인격을 넘어서, 또는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 만드는 것과 낳는 것 / 삼위이신 하나님 / 시간과 시간 너머 / 좋은 전염 / 고집 센 장난감 병정들 / 두 가지 부연 설명 / 가장합시다 / 기독교는 쉬울까, 어려울까? / 대가를 계산하기 / 호감 주는 사람이냐, 새 사람이냐 / 새 사람

 

 

본론의 내용중, '가장 큰 죄'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유는 아마도 제가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기 때문일 텐데요.

 

바로 '교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C.S.루이스는 약 10페이지에 걸쳐 다소 강한 어투로 교만이라는 '악(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군데 밑줄을 그어놓았는데요. 그 밑줄 그은 부분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봤습니다.  

 

"가장 큰 죄,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악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이 나타나면 누구나 혐오하는 악, 그리스도인 말고는 자신에게도 그런 악이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 하는 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보다 더 싫어하는 악이 없으면서도 이보다 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악도 없습니다. 이 악이 많이 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이 악을 더 싫어합니다. 바로 '교만 Pride' 또는 '자만 Self-Conceit'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덕목을 기독교에서는 '겸손'이라고 부르지요.

 

기독교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온갖 악으로 이어집니다. 교만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은 남과의 비교입니다. 즉,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만 그 자체가 적대감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내리깔고 사물과 사람을 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교만은 영적인 암입니다. 그것은 사랑이나 자족하는 마음, 심지어 상식까지 갉아먹습니다.

 

겸손해지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제가 그 첫걸음을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바로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한 걸음을 내딛기 전에는 아무 진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P.193-204)

 

이 글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읽어보면 교만은 '자기'입니다. 모든 것을 내 기준(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이것을 C.S.루이스는 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중심에 있으니 모든 사람과 사물이 자기보다는 우선순위가 밀리게 되고, 심지어 그릇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랑과 만족을 '갉아먹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듣는 설교도 '교만'에 관한 것입니다. 민감한 사람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아니 눈만 뜨면, 숨을 쉴 때마다 고개를 드는 교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특히 '교만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라는 표현에서 '아!'하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구분'과 '차별'이 마치 다른 것인 양 이 사회에서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것을 구분하며 효율과 경쟁력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결국 차별의 선행단계라는 것을. 또한 그 기저에는 '교만'을 부추기는 이 사회의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020.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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