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먼지의 여행ㅣ신혜, 삶의 진로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샨티)
샨티 출판사의 책을 가끔 골라서 봅니다. 세상의 기준을 따라 정신없이 뛰다가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보는 기분이 들어 샨티의 책을 좋아합니다.
이 책은 신혜 작가의 글입니다. 직접 손글씨를 쓰고 삽화도 그렸습니다. 신혜 작가 그 자체인 책이지요. 작가는 본인을 84년생이라고 소개합니다. 책이 출간된 것이 2010년이니 20대 후반에 쓴 글인데 그 사유의 깊이가 남다릅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뭘 했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해 옆을 보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주위를 보며 나를 바라볼 여유도 생각도 없이 세상에 속해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 신혜 작가의 '자발적인 길 잃음'의 용기를 지금이라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남들이 다 세운다는 5년, 10년 계획을 세웠지만 어떤 것 하나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나 혼자만의 생각과 계획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게 됐다. 난, 부모 밑에서 고등교육을 받으며 곱게 자란 철부지였다. 내가 자란 환경과 계층 조건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굴러가는 사회의 나사 부품 중 하나였다. 내 방 안에서의 일 외엔 관심도 없던 이기주의자였다. 부모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는 먼지였다. (p.18)
회사를 다니며 이제 10년이 지나고 제가 마주한 감각이 꼭 이와 같습니다. '부모', '회사'로 작가의 말을 대체해도 자연스러울만큼 저는 부모님에서 회사로 이어지는 갭 없는 보호 속에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그것을 하면서 먹고살 용기는 없어 계속 회사에 매달려 있는, 초라한 제가 보이네요. 조금 더 지나면 "사는 게 그런 거지"라고 말하며 어제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에 안주하며 바깥세상의 일은 마치 TV 속 세상인양 무감각하게 바라볼 제가 될 테죠.
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에 눈을 감고 싶었다.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고 두려웠다. 그것을 마주하면 더 이상 편하게 나의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p.22)
'멋진 사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자신의 빛을 잃지 않고 그 빛으로 세상을 조금씩 물들여가는 빛나는 사람.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가도 또 용기가 안 납니다. '멋진 삶'은 남에게나 어울리는, 당연히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무겁게 자리 잡은 것이죠.
'진실의 약'이라는 작가의 삽화와 글이 와닿습니다. 저 역시 7년전쯤 생의 진실을 알게 된 후, 이러한 증상(?)을 겪었고 그래서 지금 그 길을 따라 살지 않는 제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겠죠. 책의 곳곳에 스며있는 작가의 고민과 그에 따른 다양한 시도들이 저를 보는 듯해 친구를 만난 듯, 혹은 나의 일기를 보는 듯 정겹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생각이란 그 생각대로 살아낸 것만이 진실한 것'이라고 합니다. 배우고 생각하며 지식과 지혜를 가득 채운 머리와 가슴으로 그대로 '살아내는 것'이 진짜 배움이겠지요. 제가 배움에 대해 늘 빚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성경은 여행의 가이드북>
나의 여행에서 관광명소를 소개하는 가이드북은 필요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장소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지를 아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성경은 나에게 훌륭한 가이드북 역할을 했다. 여행 가이드북이 그러하듯 정보에 대한 진실 여부는 자기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자기가 직접 그 삶을 살아볼 때 더 분명해진다. 가이드북의 진실 여부를 여행을 가보면 알 수 있듯이. (p.222)
나를 묶고 있던 건 나의 두려움이었다. 내가 원하는 미래를 내가 만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p.50)
내 안의 목소리 그건, 내가 아주 조용히 하면 들린다 머릿속의 온갖 복잡한 생각과 계산을 멈추면 들린다... 집중하면 언어도 음성도 아닌 의미 같은 것이 따뜻하고 밝은 기운으로 나에게 온다... 걱정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이 목소리를 따라갈 때 모든 일은 바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술술 풀렸다 그리고 나의 성장을 돕는 길을 보여줬다. (p.63)
2021.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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