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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ㅣ아니타 무르자니, 임사체험을 통한 말기 암 치유, 웨인다이어 (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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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ㅣ아니타 무르자니, 임사체험을 통한 말기 암 치유, 웨인다이어 (샨티)


또다시 샨티의 책이네요. 요즘 제 정서가 샨티의 코드와 잘 맞나 봅니다. 

 

아니타 무르자니(Anita Moorjani, 1959)는 인도계 홍콩인이라고 하면 맞을까요. 영어권 홍콩에서 자란 인도인 여성입니다. 임파선암으로 4년을 투병한 끝에 죽음에 이르렀고, 30시간의 임사체험 후 다시 살아났으며 완전히 암이 치유된 소위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아니타의 자발적인 의도가 아닌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따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 우리는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척 중에 유사한 임사체험을 하신 분이 있고,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기에 더욱 이 책이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아니타가 이 이야기를 우리와 공유한 이유는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과 삶의 두려움을 뛰어넘은 경험을 통한 깊은 통찰을 전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불안(두려움)이기 때문이지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아니타는 임사체험 후 삶과 존재, 우주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진리'를 알게 된 것이겠죠. 임사체험 중 아니타의 인지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체가 느낄 수 있는 '오감'을 넘어선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인지 능력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내가 의식 상태에서 신체 감각을 사용할 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것이 그냥 느껴지고 이해되는 듯했다.. 모든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까지도 파악되었다. 그들의 두려움과 절망, 내 상황에 대한 체념 등이 다 느껴졌다 (p.106)


하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에 감정적으로 집착하는 그 순간, 아직 펼쳐지고 있는 더 큰 그림이 있고 더 원대한 계획이 있다는 듯 내가 움직여 뒤로 물러선다는 걸 느꼈다. 모든 것이 완벽하며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깨달음이 들자 그 상황에 대한 감정적인 집착이 거두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을 아우르고 있었다. 아니 내가 곧 그들이 '되었다.' (p.110)

육체와의 싸움이 마침내 나를 거머쥐던 손아귀를 풀었고, 그렇게 나는 이 아름다운 자유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는 내가 물리적으로 어디 다른 데로 갔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깨어났다(awakened)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내 영혼은 마침내 자신의 장엄한 진짜 모습을 깨닫고 있었다. (p.113)

 

우리는 각자를 개별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 육체를 초월한 영적인 세계(있다는 가정하에)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 하나라는 그녀의 경험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내 감정(자아라고 할 수도)'에 집착된 우리들의 시각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한발 물러서면 그 전모가 드러나는 것과 같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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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비슷한 감정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면 저렇게 작은 집, 작은 차,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지.. 아무리 높은 빌딩을 세운다 해도 하늘에서 보면 작은 점에 불과한데, 우린 그저 이 넓은 지구 상에 셀 수 없이 많은 인간 중 한 사람인 것을. 더 나아가 우주의 시각에서 보면 수많은 별 중에서 하나인 지구인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또 죽어갈 테지요. 두려움과 집착. 어쩌면 조금 우스울 정도입니다. 

 

나는 주변 사람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옳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행성의 사람들과 그들의 가치관에 나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흥미도 생기지 않았다.. 임사체험 이후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나는 일상적인 대화에 끼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웠다. (p.176) 

 

난 그저 내 자신이면 되었다. 두려움 없이! 그것은 곧 내가 사랑의 도구가 되게끔 나를 허락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깨달은 이후로 더 이상은 이른바 문제라는 것들이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삶을, 그리고 자기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전에 그랬듯이 말이다.. 정말이지 그 온갖 잡다한 세상사, 미래나 돈, 직장, 집, 집안일 걱정 따위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사소해 보였다. (p.179)

 

이제 진리를 깨달은 작가가 다시 삶으로 돌아왔을 때 겪을 어려움을 가늠해봅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완전히 달라진 채로 살아가는 일. 기독교에서는 이런 작가의 상황을 '거듭남'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 있으나 더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이 결코 그 전과 같을 수 없음도 이와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겠지요. 

 

'단지 돈 때문에 즐겁지도 않은 일을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 이곳에서의 내 삶과 시간은 내게 그보다 훨씬 소중해'.. 후회스러운 삶을 살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훨씬 중요해 보였다. (p.185)

안으로부터 보는 관점을 갖는다는 건 내 내면의 안내자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p.190) 

 

저처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니타의 글에 더 공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니타 역시 살면서 이러한 '상태'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힘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휘둘리고 넘어지겠지만 우리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오직 진리만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일 겁니다. 


2021.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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