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포르투갈 6편: 호까곶(Cabo da Roca) 여행
신트라역 앞에서 403번 버스를 타고 유럽의 땅끝마을로 불리는 호까곶(Cabo da Roca)로 간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50여분 정도 달리느라 멀미하기 일보직전 목적지에 도착한다. 사실 도착 20분 전쯤부터 비바람이 심해서 바닷가 절벽을 둘러봐야하는 호까곶 구경은 포기하고 이 버스를 그대로 타고 다시 신트라로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버스가 정차하고 사람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내리는 것을 가만히 보면서 좌석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힌다. 오. 호까곶을 구경하라는 하늘의 뜻이구나 생각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사진으로 보면 우리나라 울산의 간절곶 느낌도 난다. 이곳 호까곶은 아주 오래전, 지구가 둥글다는걸 몰랐을 때 사람들이 땅의 끝이고 바다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저 멀리 바라다보이는 바다는 대서양이다. 육지의 끝이라는 표시의 기념비('Westernmost tip of the Europe' Monument)인데 꼭대기에 올라선 돌로만든 굵은 십자가가 유럽의 근간이 기독교라는 것을 알게해준다. 이곳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많은 관광객들이 주변을 빙 두르고 서 있다가 먼저 달려들어가는 사람이 찍는다. 나는 겨우 한컷을 건졌다.
가파른 절벽 아래에 거칠게 부서지는 파도가 오늘 날씨를 알게해준다. 바람은 여전히 심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으로 여기며 돌아본다. 포르투갈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게 되다니, 어릴적 꿈만 같던 일이 요즘은 일상이 되고있다. 지루할 틈 없는 바다의 역동적인 변화를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고 서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곶(cape; 바다로 돌출한 육지) 지형의 특성상 식물들은 모두 키가 작다. 키가 큰 나무는 찾아볼 수 없고 키 작은 풀이나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살아남는 통통한 다육식물들이 대부분이다. 자연이란 얼마나 경이로운지, 때로 가혹하고 그것에 맞춰 자연은 또한 겸손하다. '생명'의 몫을 다해내는 자연을 보며 또 많은 통찰을 얻게 된다. 살아낸다는 것 자체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숭고하다.
길이 없는 절벽위를 한참 멀리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호까곶(Cabo da Roca) 관광안내소에 가면 '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해서 바람도 피할겸 들어가본다. 안내데스크에는 아무도 없다. 여러번 불렀더니 안쪽에서 티를 마시며 여유롭게 쉬던 나이 지긋한 안내소 직원이 느릿느릿 밝게 웃으며 걸어 나온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사람들의 이지(easy)한 생활양식을 몸소 체험한다. 오늘도 관광객은 꽤 많은데 별로 급한 것도, 손님 맞이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도 없다.
반갑게 악수를 청하더니 "호까곶에 온 당신은 굉장한 행운아"라며 방문객의 기분을 업시킨다. 인증서는 두 종류가 있는데 나는 그 가운데 하드커버로 된 것을 골랐다. 진지한 면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안내소 직원이 내 이름을 물어보고는 만년필로 인증서에 이름을 써주고 날짜, 서명까지 해준다. 느릿하고 게으른 노는 것만 좋아할 듯한 이미지인데 써내려가는 글은 일필휘지다. 내공이 굉장하다. 역시 여유는 실력에서 나오는거구나. 내공이 굉장하다.
저 인증서는 어중간한 크기에 하드커버로 되어있어 가방에도 안 들어가고, 그래서 이후 꽤 성가신 기념품이 되었다. 돈을 지불하고 짐을 떠안은 셈이다. 1시간 남짓 바다를 구경하고 이제 오늘 마지막 코스인 까스까이스(Cascais)로 간다. 버스정류장에서 아까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군밤도 나눠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옆구리에 숨기고 있던 인증서를 다들 신기한 듯 돌려본다. 멋지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도 구입하지 않는다. 독보적인 어리석음을 확인한다.
포르투갈 7편: 까스까이스(Cascais) 여행으로 이어짐.
2022.2.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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