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_에릭 와이너
이 책은 '소트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의 제목부터 책의 표지, 삽화, 속지 색깔까지 매력이 뚝뚝 떨어지는 책입니다. 급행열차를 타고 철학자를 만나러 가는 길, 혹은 급행열차와 같은 우리의 삶을 철학자와 함께 달리는 길 이라는 의미로 책의 제목을 이해해봅니다. 에릭 와이너는 칼럼니스트 답게 글을 참 잘 다루는 작가입니다. 페이지마다 '한 문장'을 찾아낼 수 있을정도입니다.
인생의 시기 마다, 선택의 순간 마다 철학이 필요하고 그것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목차에서부터 보여줍니다. 책은 크게 1부 새벽 / 2부 정오 / 3부 황혼으로 구성됩니다. 청년기 / 중장년기 / 노년기를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루소처럼 걷는 법, 소로처럼 보는 법, 간디처럼 싸우는 법,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몽테뉴처럼 죽는 법 등 책의 소제목들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선택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존주의자 알베르 카뮈의 말을 언급하며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묻습니다. 만약 그렇다는 결론이 났다면, '더욱더 성가신'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며, 그것은 "침대에서 나가야 하나?"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모든 질문을 두 부류, 즉 '존재'와 '당위'로 나누었다... 사실 명제에서 윤리 명제로 넘어가선 안 된다... 어쩌면 지금 이대로 이불 속에 있는 게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내 생각엔 바로 이 성가신 '마땅히'가 우리가 겪는 고충의 원인이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아내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의 말이 생각납니다. "You are not here in the world for yourself. You have been sent here for others. The world is waiting for you!" 철학과 종교는 결이 닮았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장애물은 타인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 오늘 네가 만날 사람들은 주제넘고 배은망덕하고 오만하고 시샘이 많고 무례할 것이다." 지금도 마르쿠스가 살던 시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우리는 또 한 명의 훌륭한 산책자였던 윌리엄 워즈워스의 표현처럼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걷는다... 루소에게 걷기는 숨쉬기와 같았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만 머리가 잘 돌아간다... 니체는 철학보다 몸에 더 많은 지혜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특정 역할(은행, 기자, 웨이터)로 평생을 살다가 급작스럽게 이 정체성을 빼앗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지? 자신의 유한성에 직면한 사람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배역에서 빠져나오는 배우처럼 자신의 역할을 더욱 기꺼이 폐기한다... 마음의 대답에 도착하려면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기꺼이 자신의 무지와 한자리에 앉으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비웃음은 지혜의 대가다."
비웃음이 지혜의 대가라는 표현이 가슴에 박힙니다. 모두가 달려가는 잘 닦인 큰길을 벗어나 수풀이 우거져 길도 없는 곳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은 '당연히' 그 사람을 어리석다고 비웃을 겁니다. 속도가 중요한 가치인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경험하며 만들어갈 세상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그 사람만의 고유한 길이 됩니다.
"상상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결말 같은 건 없다. 무한한 시작의 사슬만이 있을 뿐...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 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익숙함은 경멸을 낳지 않는다. 마비를 낳는다... "
"길거리에서 한 젊은 여자가 보부아르를 멈춰 세우고 이렇게 말했다. "꼭 저희 엄마 같으세요." 보부아르는 혼란스러웠고 배신감을 느꼈다. 한때는 친구였던 시간이 이제는 자신이 모르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장 폴 사르트르는 노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자신의 노화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기 나이와 충돌하고 12년이 지났을 무렵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순셋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사실이 낯설다."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주변에서 나를 나이든 사람으로 대할때 '나이듦'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발적이지 않은 노년은 모두에게 낯설고 어려운 길입니다. 며칠전 저보다 몇살 위인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가 왔습니다. "말리랑 산책하는데 누가 계속 쳐다보더니 "강아지가 사모님을 빼닮았네요!" 라고 '칭찬'을 하는데, 어딘가 석연찮다"라는 내용입니다. 아마 '사모님' 때문이겠지요. 나이와 '충돌한다'는 표현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명망 높은 대학 중 한 곳의 종신 교수직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니체는 떠났다. 그는 신변을 정리하고 출판사에 짦은 편지 한 장을 보냈다. "나는 절망하기 직전이며 그 어떤 희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하고 대문자로 서명을 했다. "반쯤 눈이 먼 남자." 이런 극적인 행동으로 니체는 교수의 안정적인 생활을 방랑하는 철학자의 삶과 맞바꾸었다.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해명할 필요가 없고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인 삶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기 있는 행동, 혹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 니체처럼 과거의 삶을 멀리 내던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루소처럼 니체도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다.
장소는 중요하다. 장소는 생각의 보고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이며..."
니체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교수직을 퇴사한 니체, 니체의 삶에 묘한 동질감을 느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회부적응자라는 은근한 자부심마저 생기려고 합니다. '장소'는 생각의 보고라는 것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그렇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익숙함은 생각마저 마비시킵니다.
"모든 진실은 구불구불하다." 니체가 말했다. 모든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난 후에야 과거를 돌이켜보며 서사를 매끄럽게 다듬고 패턴과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지그재그다.
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정반대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선택할 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하면 삶은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질병마저도 신체적 고통이 계속될지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탐험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고의 전환은 찰나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 오랜 시간의 고뇌와 성찰이 전제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삶을 다르게 보는 시각, 그것이 가능하다면 '자유'를 누리는 삶은 자연적으로 뒤따라올 것입니다.
2022.2.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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