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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생활 봉사

[벨기에_4] 벨기에 브뤼셀(Brussels) 여행 3화ㅣ크리스마스 시즌 (ft.해외여행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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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비 오는 브뤼셀을 걷는 것도 참 좋다. 비에 젖어 물기를 머금은 바닥, 모든 것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듯한 차분한 도시의 모습이 들뜬 여행자의 마음도 차분하게 한다. 함께 우산을 받쳐 들고 가는 행인들도 빗속에서는 서로의 속도를 맞춘다. 노란색 와플 트럭이다. 저 남자는 와플을 사려는 걸까, 길을 묻는 걸까. 어정쩡한 몸의 방향을 볼 때 와플을 사려는 건 아닌 듯하다. 비 오는 날 와플 장수는 평소보다 수익이 좋을까, 그렇지 않을까. 비가 오면 사람들이 따뜻한 와플을 찾을 것 같기도 한데. 난 와플을 좋아하지 않지만 와플 굽는 냄새는 빗속에서도 고소하다.    


두 눈은 경치를 구경하고, 코는 도시의 냄새를 쫓고, 한 손은 우산을 들고, 한 손은 사진을 찍고, 머릿 속으로는 공상을 하며 걷다 보니 길을 잃었다. 당연한 수순이다. 여긴 어디쯤일까.

 

주위에 보이는 상점들이 모두 명품매장이다. 까르띠에, 구찌, 에르메스. 값비싼 물건을 홍보하는 데는 노란색? 황금색? 불빛이 효과적인 것일까. 상점 안에는 잘 차려입은 직원들이 바깥세상엔 관심이 없다는 듯 비 오는 풍경에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신기하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데 밖을 쳐다보지도 않고, 매장 안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는 걸까.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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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살짝 그쳤는데 공기가 아까보다 훨씬 차다. 찬 공기를 잠시 피해 아케이드 형태의 쇼핑센터로 들어간다. 크리스마스 연휴로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다. 아케이드를 지나 반대편 통로노 나가는데! 눈 온다 펑펑 함박눈이다! 예쁘다. 내겐 올해 첫 눈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크리스마스 연휴에 맞이하는 첫눈이라니. 이렇게 낭만적인 일이 일어나다니. 외투에 붙은 털 달린 후드를 쓰고 우산은 접은 채로 잠시 밖에 서서 눈을 맞았다. 아름답다. 

갑자기 눈이 내리니 길에 있던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한참 눈 구경을 하다가 내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냈다. 인터넷이 잘 잡히지 않아 숙소 쪽 방향인 듯한 곳으로 계속 걸었는데, 다시 구글맵을 돌려봐도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곳이 많아 헷갈린다. 현지인처럼 보이는 분께 물어봤더니 나는 아까 그 고등법원에서 나온 이후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왔다. 이런.

 

눈 구경도 실컷 했으니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우산은 계속 접어둔채로 후드를 쓰고 눈을 맞으며 걸었다. 뭔가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걷다 보니 다시 그 고등법원이 나온다. 반대편 건널목을 건너 내가 가야 할 길로 다시 방향을 바로 잡았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일은 허다하다. 내 삶의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 길을 잃었지만 난 그곳에서 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다. 그리고 조금 돌아왔지만 다시 바른 길을 찾았다. 길을 잃은 대신 경험을 얻었다. 


법원 건너편에 작은 공원이 있어 잠시 들어가본다. 에그몬트 파크(Egmont Park)인데 초록 잔디 위에 하얀 눈, 초록 나무 위에 하얀 눈, 벤치 위에 하얀 눈이 너무 잘 어울린다. 토끼 조형물도 있고, 어린아이 조형물도 있다. 도심 속에 마련된 작고 아늑한 공원이다. 추운 날씨에 눈까지 와서 그런지 공원에는 아무도 없다. 나만의 정원인 것인가! 

 

 

가다 보니 노트르담 성당(Eglise Notre-Dame des Victoires au Sablon)이 나온다. 내가 아까 다른 건물을 이 교회로 착각하면서 가야 할 방향을 잘 못 잡고 엉뚱한 길로 하염없이 갔다는. 이제 정말 바로 찾은 듯하다. 잠시 성당에 들어가서 카메라 닦고, 콧물 닦고, 모자 털고, 머리 털고, 손 주무르면서 몸을 녹인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근사하다. 나 같은 여행자에게 꼭 필요한 장소가 교회다. 무더위를 피하고, 비를 피하고, 추위를 피해 몸과 마음을 재단 장할 수 있는 곳. 감사합니다.   


오! 성당에서 나오니 바로 건너편에 한국문화원이 있다. 해외에서 한국어만 봐도 반가운데 한국문화원이라니, 주변 환경도 좋고, 문화원이 입주해있는 건물도 고급스럽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기분. 문화원 근처로 각국 대사관과 정부 청사가 모여있다. 그래서 도로가 더 조용했나보다. 오늘이 휴일이니까. 거의 이 도시를 나 혼자만 누비고 다니는 듯하다.  


눈이 그치고 바닥이 얼면서 돌 바닥에 살얼음이 씌워졌다. 미끄러워서 조심조심 건물 쪽으로 붙어서 걸어내려 간다.


드디어 브뤼셀 광장(Place Royale Bruxelles)에 도착. 트램이 지나다니고 넓은 광장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몽데아흐가든(Jardin du Mont des Arts)이 나온다. 사실 눈이 비로 바뀌고 바람까지 불어서 여기서부터는 나도 대충 사진 한 장씩만 찍으면서 지나간다. 언덕에 위치한 광장! 바람이 거세다! 비인지 눈인지 차가운 무엇인가가 바람을 타고 앞, 뒤, 옆에서 마구 들이친다. 거센 눈바람 비바람에 우산도 소용이 없고 길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카페나 쇼핑센터로 대피하느라 분주하다. 


나도 지하상가로 내려간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던 사람들이 지하에 다 모여있다. 이곳에서 저녁을 사 먹고 쉬다가 아까 오전에 갔던 그랑플라스(Grand Place) 광장 불빛쇼 구경하러 가야겠다. 여행을 하면 늘 하루가 길고 버라이어티 하다. 오늘은 더욱 그렇다. 오전에 있었던 일이 마치 어제 일인 듯 아득하다. 거친 눈바람이 시간의 밀도를 높여준다.   

 

2022.1.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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