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가기로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10시 조금 넘어 잔 덕분에 아침 6:30분쯤 둘 다 일어났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7시부터 주는데 너무 일찍 내려왔는지 아무도 없다. 우유 따르는 소리, 계란 굽는 냄새, 햄 굽는 냄새, 스크램블 에그 냄새, 흐뭇하다. 사실 노르웨이 유스호스텔은 오슬로도 마찬가지였지만 시설도 좋고 음식이 잘 나온다. 그득그득 접시를 채우고, 배를 채우고, 그것을 3회 반복한 다음 깨끗해진 접시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사 끝.
호스텔 직원의 안내를 따라 숙소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도착시간을 체크한다. 호스텔 직원이 우리더러 내려갈 땐 절대 걸어가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다리 후들거려서 여행을 망칠수 있다며 꼭 버스를 타라고 한다. 어제 들렀던 슈퍼마켓에 가서 버스 티켓을 구입하려니 가게에선 VISA카드만 받는단다. 현금은 어제 아이스크림 사 먹느라 다 써버렸고, MASTER카드뿐이라 일단 가게에서 나왔다.
마음을 굳게 먹고, 얼굴에 뻔뻔함을 입히고, 우리가 탈 버스가 와서 무조건 올라탔다. 기사분께 다음 정류장에 버스티켓 발매기가 있으면 거기 내려서 티켓을 구입해서 요금을 지불하다고 양해를 구하니 알겠다고 타란다. 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류장 3개를 지나는 동안에도 티켓 발매기가 안 보인다. 네 번째 정류장에 드디어 티켓 발매 기기가 보여서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 내리려고 하니 기사님이 그냥 앉아있으라고 손짓을 한다. 시간이 걸리니까 그냥 앉아있으라는 것인가. 한참을 달려 우리 목적지인 베르겐 역에 도착해서 다시 기사분께 티켓을 사 올 테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니 "Have a nice trip! :)"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높이 든다. 우와!! 둘이 합쳐 2만 원 정도 되는 버스요금을 안 받으신단다. 여행 즐겁게 하라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기사분께 우린 양손 엄지손가락을 높이높이 치켜들며 감사인사를 하고 내렸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마음의 여유와 외국인에 대한 친절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어제 2시간 넘게 걸어올라간 길을 20분 만에 내려와 버렸다. 오슬로행 기차는 11:30분 출발이라 3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시내 구경을 하기로 하고 배낭은 기차역 락커에 보관하러 간다. 가장 큰 사이즈 락커 하나에 배낭 2개가 다 들어가서 9천 원 정도를 내고 짐을 넣었다.
어제 봤던 중앙호수 분수와 광장이 아침에 보니 또 새롭다. 날씨도 좋고, 우리에게 배낭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 아침햇살에 수면이 반짝인다.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잔잔한 호수를 한동안 바라본다.
영국인 친구가 북유럽 남성들이 무척 가정적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내게 영국남자 말고 북유럽 남자를 만나라는 덕담을 얹어 축복해줬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광장을 걷다가 그 말을 떠올리게 한 장면을 목격한다. 큰 배낭을 멘 아빠가 아기와 협상 중이다. 아이는 울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지만 아빠는 목소리를 높이지도, 주위 눈치를 보지도 않고, 당황해하지도 않으면서, 아주 단호하고 다정한 태도를 유지한 채 아이를 달랜다. 계속 바라볼 수가 없어 지나쳐 왔지만 아빠가 아이를 얼마나 잘 돌보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입은 와인색 우주복과 비뚤어진 파란색 모자마저 너무 귀엽다.
평일 아침 출근시각인데도 도시가 조용하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호수공원 쪽이 아닌 반대편 도로로 다니는 듯하다. 아래 민트색 지붕을 한 밝은 회색 건물은 베르겐 성당(Bergen Domkirke)인데, 문이 항상 열려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베르겐의 랜드마크가 있는 곳, 브리겐(Bryggen)으로 가보려고 한다. 브리겐은 다양한 색깔의 목조 가옥으로 유명한 중세 부두라고 할 수 있는데 베르겐 항구 쪽에 위치해있다. 베르겐역에서 브리겐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데 가는 길에 축제를 하는 듯한 골목을 지나간다. 노르웨이어에는 동그라미에 대각선이 가로지르는 저 문자가 많이 쓰이는데 어떻게 발음하는지는 모르겠다. 위? 외? 대충 베르겐 무슨 페스티벌이라는 것 같다. 이상한(?) 페스티벌은 아니겠지, 잘 모르지만 사진으로 남겨본다.
조용하지만 다채로운 구경거리가 있는 골목길을 걷다보니 바다 냄새가 나고 바닷소리가 들린다. 거의 항구에 다 왔나 보다. 골목을 벗어나니 베르겐 앞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부두 양쪽에는 크고 작은 선박들이 정박해있다. 부두 오른편에는 레고로 만든 것 같은 알록달록 목조 건물들이 오밀조밀 줄지어 서있다. 이곳이 브리겐(Bryggen) 이구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들이라고 한다.
중간중간 화재로 리모델링을 하면서 건물들이 제각각 삐뚤빼뚤 개성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목조 건물 앞 도로에는 뭔가 오픈마켓 준비를 하는지 장비를 갖다 두고 천막을 설치하느라 분주하다. SNS를 통해 노르웨이 풍경 사진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사진 속에서 이렇게 생긴 목조 가옥들을 많이 본다. 건물 자체도 귀엽고 한편으론 크리스마스 선물이 담겨있는 상자같이 보여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2022.1.
글약방her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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